[대박과 쪽박사이] 영화 '호우시절'

이인경 기자- '따뜻하지만 낯간지러운 걸 어떡해?' 쪽박지수 70％

"첫사랑과 만약 다시 만난다면 해피엔딩일까?"

허진호 감독이 연애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또한번 던졌다. 영화 '호우시절'은 '사랑에도 과연 타이밍이 있을까' '만약 그때 내가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허감독의 답은 의외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다만 너무나 따뜻해서 낯이 간지럽다.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준 염세주의적인 시크함은 온데 간데 없다. '호우시절' 속 풋사랑 이야기는 밝고 착한 시선으로 가득해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연상케한다.

영화 제목은 중국 당대의 시성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의 한 구절인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좋은 비는 내려야할 때를 안다)'에서 따왔다. 영화 배경도 두보가 말년을 보낸 청두의 두보초당이다.

동하(정우성)와 메이(고원원)는 미국 유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건설 중장비 회사의 팀장인 동하는 중국으로 출장가서 우연히 두보초당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메이와 재회한다. 3일간의 만남에서 두 사람은 과거 잊고 지냈던 풋풋한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이게 사랑인가' 흔들린다. 감정을 확인할 시간도 빠듯한 찰라 우연한 사고가 생긴다. 이로 인해 동하와 메이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대실소망(大失所望)이란 말처럼, 영화는 정석대로 흘러갈 뿐 큰 반전이 없다. 동화 같은 영상과 음악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내 연출하지만, 갑자기 동하와 메이의 베드신에선 180도 장르가 바뀐다. 두 사람의 숨소리와 표정이 화면에 가득차 동화에서 튀어나온 지리한 현실을 부각시키는 듯해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다.

특히나 잘 생긴 정우성의 마스크는 마치 영화 내내 '100분짜리 청정원 CF'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관람 후 식욕이 아닌, 중국 두보초당으로 여행 떠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 best@sportschosun.com>

이진호 기자- '아련한 옛사랑의 추억에 불을 지피는' 대박지수 65％

'호우시절'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단하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청춘 아이콘 정우성, 고원원 때문만은 아니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에서, 가슴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던 허진호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고 할까?

'호우시절'은 한중 합작영화다. 합작영화는 제작ㆍ투자 면에서 폭이 넓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멜로 장르에 있어선 더욱 그랬다. 두 나라를 오가는 유학생 스토리가 대부분이니, 신선함이 부족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호우시절'은 그간의 합작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중국이란 배경에 제3국어인 영어가 사랑의 공통 언어로 등장했다. 마치 진짜 사랑은 언어보다는, 이끌림과 그리움이라고 소리없이 웅변하기라도 하는 듯.

영화의 막이 오르자마자 울리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은 마음속에 간직한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 애틋함을 싹 틔우게 한다.

박동하(정우성)는 성도(成都)라는 옛 연인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에 도착한다. 시끄럽고 교통도 엉망인 중국이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하다. 그는 어떤 이끌림에 말없이 두보사당을 걷는다. 그리고 동하는 바로 그곳에서 옛사랑 메이(고원원)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마치 다시 만날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 그들은 사랑과 상처를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풀어나간다.

국내에서는 정우성에 홍보 포인트가 많이 맞춰졌지만 영화의 진가는 고원원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잔잔하게 부는 바람 결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맑은 영혼 속에 스며든 부드러운 호흡, 첫사랑에 대해 뭇남성들이 품은 로망 그 자체다.

또 한국 영화를 자막으로 보는 이색적인 즐거움, 사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눈요깃거리가 양념처럼 재미로 곁들여져 있다. 무엇보다 김상호의 감초 연기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에 청량감을 더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다 보니 늘어지는 느낌이 잦다. 봄을 유난히 좋아했던 두보처럼 이 영화 또한 가을보다 봄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zhenha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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