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선택] 말기 암환자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이 암 진단을 받는다. "얼마나 나쁘냐"는 물음에 의사는 "암 4기"라고 한다. "몇 기까지 있느냐"고 묻자 "4기"라고 답한다. 그때 새 한 마리가 진찰실 창문에 와서 부딪히고 주인공은 권총을 자기 관자놀이에 대고 쏜다. 그런데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주인공이 눈을 번쩍 뜬다. 권총 장면은 상상이었다.

캐나다 영화 '원 위크'(24일 개봉)를 여기까지 봤을 때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이렇게 흥미로운 시작이라면 영화도 좋을 것이었다. 과연 영화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벤(조슈아 잭슨)은 느닷없는 암 선고를 받는다. 귀갓길에 중고 오토바이를 산 그는 약혼녀 사만다(리안느 발라반)를 놔둔 채 오토바이 여행을 떠난다. 캐나다를 횡단해 태평양에 닿을 때까지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인기 높았던 이 영화는 음악영화가 아니다. 다만 이 영화에 쓰인 음악들이 매우 좋다. 영화는 매양 그대로인 것들에서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며, 음악은 그때마다 관객의 옷깃을 파고든다.

아무런 준비 없이 홀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 여행은 물에 타 먹는 물처럼 밋밋하다. 그러나 삶과 우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여행자는 나무와 산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전혀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 그가 떠남을 결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커피컵에 있던 '젊은이여, 서쪽으로 가라'는 문구였다. 그가 입원을 거부했기에 간호사는 일찍 퇴근했고, 그랬기에 간호사는 탈선한 기차를 타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우연은 교묘히 연출된 필연이며 횡재는 횡액과 등이 붙은 쌍둥이다. 다만 이런 깨달음은 득도(得道) 수행 마지막 날이나 시한부 선고 뒤에야 온다.

내 인생이 돈과 지위와 명성을 좇아 급행열차로 내달리는 것을 알아챘을 때, 이 영화는 차분한 숨고르기를 도와준다. 주인공이 묵은 호텔의 성경책은 텅 비었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 '지금의 우리 또한 우리로다―율리시스 중에서'라고 쓰여 있다. 주인공도 관객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영화 보고 집에 갈 때쯤엔 알 것도 같다.

▶전문가 별점

죽음을 앞둔 남자의 음악과 함께하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여행담.
★★★☆

― 이상용·영화평론가

이보다 더 멋질 수 없는 캐나다의 달력 그림 같은 풍경과 그것을 압도하는 음악. ★★★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