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이창호표 명국(名局)

〈총보〉(1~202)=202 시점에서 계가를 한다면 흑이 반면(盤面)으로 1집을 남기는 정도라는 결론. LG배 전속 해설위원인 최규병 九단은 "백의 명국"이란 총평과 함께 "흑에게도 문제가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상대 실수 없이 완벽히 닦아버렸다는 의미였다. 흑은 도처에서 수를 내는 것 같았는데 대세는 한 번도 장악하지 못했다. 이창호의 평형 감각이 돋보인 한판이었다.

27로 28자리에 못 가면서 흑의 고전이 배태(胚胎)됐다. 28, 30이 일견 한가해 보이지만 이 바둑을 시종 주도하게 만든 멋진 수법. 38을 당하자 흑은 이미 참고도 1 이하의 '땅따먹기'작전으론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53의 침입군을 의연히 살려주며 두텁게 판을 이끌어간 솜씨는 손바닥 위에서 손오공을 어르는 부처님이었다.

이로써 이창호도 8강 대열에 합류했다. 6년째 패권으로부터 멀어져 있지만 그는 LG배 통산 최다(4회) 우승자다. 그 이창호가 한때 자신이 아지트로 삼았던 LG배 정상으로 회군(回軍), '준우승 증후군' 탈피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63…157, 177…171, 193…56, 202수 끝 백 불계승, 소비시간 백 2시간58분, 흑 2시간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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