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페이퍼진] 임정식 기자의 시네마 오디세이 '애자'
입력 : 2009.09.28 10:53
| 싸울 때 더 사랑스러운 '이상한 모녀'… |
애자(최강희)는 천방지축 말괄량이다. 염색한 깻잎머리에 술, 담배로 학창시절을 보낸다. 글 좀 쓴다는 소설가 지망생. 비 오는 날에는 시 쓴답시고 학교 빠지기 일쑤다. 집안에서 문제아 취급 당하는 건 당연지사. 엄마에게 뒷머리채 잡혀 끌려다니는 걸 밥 먹듯이 한다. 스물 아홉 살이 되도록 변한 건 별로 없다. 지리멸렬한 청춘이다.
엄마(김영애)는 용감하다. 애자의 당당한 맞수로서 수없이 티격태격하면서, 홀로 남매를 키우면서, 엄마는 씩씩하다. 딸 몰래 아들만 유학보내고, 사업자금 대주느라 바쁜 엄마이기도 하다. 딸에게는 시집 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영화 '애자'는 이런 전형적인 엄마와 딸 애자의 애증을 실감나게 그린다.
하지만 모녀의 갈등은 심각하지 않다. 근본적이지도 않다. 둘의 전쟁과 휴전을 다소 유머러스하게 풀어간 연출 덕분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눈치챌 수 있다. 모녀의 싸움은 껍질일 뿐이라는 것을. 나중에 불가항력의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고, 아픈 이별을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예측 가능성은 '애자'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문제는 충돌하는 두 개의 서사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다. 관객의 예상을 배반하고 새로운 서사를 끌어들일 것인가. 아니면 익숙함을 무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인가. 신인 정기훈 감독은 익숙함을 선택했다. 엄마의 위암 재발이라는 극적인 사건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이때부터 모녀의 기싸움은 눈 녹은 듯 사라지고, 화해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른다.
'애자'는 최강희, 김영애의 2인극이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 매우 사실적인 에피소드와 대화 덕분이다. 모녀가 나누는 대화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400명 인터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덕분이다.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서 내려온 애자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보자. "나한테 해준게 뭐 있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딸이 대들면, 엄마는 "글 써서 팬티 한 장이라도 사봤느냐"고 응수한다. 딸에게 집 나가라고 등 떠밀면서도 "김치 꼭 챙겨가 이년아"라고 외친다. 메신저 대화는 웃음을 자아낸다. 손 빠른 딸과 독수리 타법 엄마의 대화는 소통이 완벽하게 이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자'를 보면,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가 떠오른다. 둘 다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모성애라는 고전적인 무기를 꺼내 감성을 자극한다. 경제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분명 효과적인 전략이다. 삶이 힘겨워 무너지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실종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종된 엄마를 찾아나선 딸과 아들, 남편이 각자의 시선으로 엄마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신경숙 특유의 감수성 넘치는 문장이 빛난다. 출간 10개월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애자'와 '엄마를 부탁해'는 유사하다. 엄마의 부재(실종) 혹은 예상되는 부재(죽음)를 통해 엄마를 호출한다. 엄마의 신산한 삶, 자식을 위한 희생, 남아선호사상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자식의 시점으로 엄마의 삶을 그리는 점도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엄마라는 캐릭터의 성격이다. '애자'의 엄마는 단선적이다. 위암 재발을 계기로 모녀는 사랑의 관계로 급격하게 재편된다. 갈등이 사라진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상대적으로 다면적이다. 희생과 헌신 외에 자식들이 몰랐던 비밀을 갖고 있다.
'애자'는 중반 이후 긴장감이 떨어진다.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됐고, 비슷한 대사와 에피소드가 반복되면서 신선도가 떨어진 탓이다. 사실 문제아 딸이 효녀로 변하고, 엄마는 수술비로 부도 직전의 자식을 도우려 한다는 삽화는 익숙하다. 물론 모성애 코드 자체는 유효하고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애자'가 관객의 가슴을 뒤흔들지는 못하는 이유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
엄마(김영애)는 용감하다. 애자의 당당한 맞수로서 수없이 티격태격하면서, 홀로 남매를 키우면서, 엄마는 씩씩하다. 딸 몰래 아들만 유학보내고, 사업자금 대주느라 바쁜 엄마이기도 하다. 딸에게는 시집 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영화 '애자'는 이런 전형적인 엄마와 딸 애자의 애증을 실감나게 그린다.
하지만 모녀의 갈등은 심각하지 않다. 근본적이지도 않다. 둘의 전쟁과 휴전을 다소 유머러스하게 풀어간 연출 덕분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눈치챌 수 있다. 모녀의 싸움은 껍질일 뿐이라는 것을. 나중에 불가항력의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고, 아픈 이별을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예측 가능성은 '애자'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문제는 충돌하는 두 개의 서사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다. 관객의 예상을 배반하고 새로운 서사를 끌어들일 것인가. 아니면 익숙함을 무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인가. 신인 정기훈 감독은 익숙함을 선택했다. 엄마의 위암 재발이라는 극적인 사건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이때부터 모녀의 기싸움은 눈 녹은 듯 사라지고, 화해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른다.
'애자'는 최강희, 김영애의 2인극이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 매우 사실적인 에피소드와 대화 덕분이다. 모녀가 나누는 대화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400명 인터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덕분이다.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서 내려온 애자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보자. "나한테 해준게 뭐 있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딸이 대들면, 엄마는 "글 써서 팬티 한 장이라도 사봤느냐"고 응수한다. 딸에게 집 나가라고 등 떠밀면서도 "김치 꼭 챙겨가 이년아"라고 외친다. 메신저 대화는 웃음을 자아낸다. 손 빠른 딸과 독수리 타법 엄마의 대화는 소통이 완벽하게 이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자'를 보면,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가 떠오른다. 둘 다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모성애라는 고전적인 무기를 꺼내 감성을 자극한다. 경제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분명 효과적인 전략이다. 삶이 힘겨워 무너지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실종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종된 엄마를 찾아나선 딸과 아들, 남편이 각자의 시선으로 엄마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신경숙 특유의 감수성 넘치는 문장이 빛난다. 출간 10개월만에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애자'와 '엄마를 부탁해'는 유사하다. 엄마의 부재(실종) 혹은 예상되는 부재(죽음)를 통해 엄마를 호출한다. 엄마의 신산한 삶, 자식을 위한 희생, 남아선호사상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자식의 시점으로 엄마의 삶을 그리는 점도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엄마라는 캐릭터의 성격이다. '애자'의 엄마는 단선적이다. 위암 재발을 계기로 모녀는 사랑의 관계로 급격하게 재편된다. 갈등이 사라진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상대적으로 다면적이다. 희생과 헌신 외에 자식들이 몰랐던 비밀을 갖고 있다.
'애자'는 중반 이후 긴장감이 떨어진다.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됐고, 비슷한 대사와 에피소드가 반복되면서 신선도가 떨어진 탓이다. 사실 문제아 딸이 효녀로 변하고, 엄마는 수술비로 부도 직전의 자식을 도우려 한다는 삽화는 익숙하다. 물론 모성애 코드 자체는 유효하고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애자'가 관객의 가슴을 뒤흔들지는 못하는 이유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