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향한 일편단심… 그의 소나무는 성스럽다

동트기 전, 경주 남산의 소나무와 나무 주변을 휘감는 안개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은 짧다. 배병우는 이 순간을 잡기 위해 성전(聖殿)에 숨어든 침입자처럼 숨죽인 채 기다린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는 왕릉을 지키는 소나무로 재목이나 땔감으로 쓰이는 소나무와는 다르다. 그가 '린호프 파노라마'(카메라)로 이렇게 생포한 소나무와 안개는 신령스럽기도 하고 말을 건네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10월 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배병우전(展)》은 그가 25년 넘게 찍어온 소나무와 돌·오름, 그리고 스페인 알람브라궁전에서 찍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를 위해 기획한 전시로, 지금까지 사진가의 회고전 성격인 전시는 드물었다.

배병우는 2007년부터 2년간 스페인을 오가며 알람브라궁전 안의 정원과 주변의 숲을 찍었다. 알람브라궁전 관계자가 마드리드에서 열린 배병우의 소나무 전시를 보고 요청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들은 지난 7~9월 알람브라궁전 안에 있는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이번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알람브라궁전과 한국의 창덕궁이 함께 전시된다. 그는 1970년대부터 창덕궁 내부를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인 알람브라궁전과 견주어 볼 수 있도록 함께 전시한다.

배병우는 "알람브라궁전의 주변 숲은 소나무가 중요한 수종(樹種)"이라면서 "한국은 소나무가 굽은 게 많지만 스페인 소나무는 위로 씩씩하게 뻗었다"고 말했다. 이슬람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알람브라궁전의 화려하면서도 기하학적인 정교함은 배병우의 숲과 정원으로 새롭게 표현됐다. 그는 알람브라궁전을 사진에 담을 때도 달이 마지막으로 퇴장하기 직전의 모습을 잡았다. 그의 손에서 알람브라궁전은 빛에 따라 화려하게 채색됐다.

이번 전시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역시 이 땅에서 카메라에 담은 소나무다. 배병우는 소나무를 찍기 위해 1984~1985년 10만㎞를 주행할 정도로 전국을 누볐다. 그는 "겸재 정선도 좋은 작품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여행이 그의 외적 여행이라면 독서는 내적 여행이다. 스페인과 한국을 오가며 전시로 바쁜 와중에도 《밀레니엄》 《아웃라이어》 등을 읽었다. "옛 성현이 예술적 재능은 배워서 얻어지지 않지만 만 권의 책을 읽거나 만 길을 여행하면 얻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전시는 12월 6일까지.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