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전 펀드팀장의 '재테크 파일'] 국내외 펀드 1439개 중 84개만 '원금 회복'

 

 

올 들어 주가가 급등해 펀드들이 50~90%씩 수익률을 냈다고 하는데도 중소기업 직원 김모(35·서울 서초동)씨는 아직도 우울하기 짝이 없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는 소식에 은행 창구로 달려간 것이 지난 2007년 10월 말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지주회사펀드 등 총 3개 국내 주식형펀드에 1500만원을 넣었다.

하지만 펀드 가입 후 며칠도 안 돼 주가는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작년 하반기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벌어지고 코스피지수 1000선이 무너지자 펀드 손실액은 600만원까지 불어났다.

김씨의 펀드는 올해에도 좀처럼 원금이 회복되지 않았고, 참다못한 김씨는 이달 중순 결국 200만원 손실을 감수하고 펀드 3개를 모두 해지했다.

김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 의뢰해 2007년 10월 이후 국내 및 해외 주식형펀드 1439개 수익률을 분석해 봤다. 그 결과 전체 펀드의 5.8%인 84개 펀드만 겨우 원금을 회복했다. 나머지 1355개(94.2%)는 여전히 투자 원금을 까먹고 있었다.

◆펀드 투자자 4분의 1은 아직 손해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향해 무섭게 달려가던 2007년 10월 대한민국 전국에는 펀드 광풍이 불었다. 증권사 창구마다 적금 깬 돈으로 펀드에 가입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였다. 2007년 10월 한 달간 주식형펀드 신규 가입금액은 25조5183억원에 달했다. 11월에도 19조원의 자금이 신규로 들어왔다. 그해 10월과 11월 두 달간 신규로 개설된 펀드 계좌 수만 각각 204만개와 150만 계좌였다. 국내 전체 주식형펀드 계좌(1510만개)의 4분의 1가량이 주가 꼭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2007년 10월 말 국내 주식형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25일 기준가로 평균 마이너스 14.8%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주가 2000선에서 1000만원을 투자했다면, 손실액이 지금은 140만원 수준이란 얘기다. 해외펀드에 가입했다면, 평균 37%씩 원금 손실을 보고 있다.

올 들어 국내 주식형펀드 수익률은 54%에 이른다. 브라질·러시아 펀드는 올해 수익률이 90%다. 수치만 보면 모든 펀드투자자가 마치 엄청난 펀드 수익을 거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주가 꼭지에 가입한 투자자들에게 '수익률 50%, 90%'는 꿈의 수치에 불과하다.

◆일부 해외 펀드 아직도 '반 토막'

국내 주식형펀드로는 최대 규모인 '미래에셋인디펜던스주식형K-2Class(설정액 3조3200억원)'는 고점 대비 17% 원금 손실을 보고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순자산 10억원 이상) 중 코스피지수 하락률(18%)보다 더 나쁜 성과를 내고 있는 펀드가 35%에 달했다.

일본·중국·러시아·리츠펀드의 경우 여전히 반 토막 상태다. 특히 중국펀드와 브릭스펀드 열풍을 일으키며 가입금액이 3조원을 넘어선 '신한BNPP봉쥬르차이나증권투자신탁2'(-41%)와 '슈로더브릭스증권자투자신탁'(-24%),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증권투자신탁(-52%) 등은 원금 회복까지 갈 길이 멀다.

반면, 특정 지수 흐름을 따라 운영되는 인덱스펀드·중소형펀드·그룹주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수익률 회복이 가장 빨랐다. 자동차업종 지수의 흐름을 따라 운영되는 '삼성KODEX자동차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은 현재 35%의 높은 수익을 내고 있었다. 또 중소형 종목을 골라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마이에셋자산운용의 '마이트플스타증권투자신탁'(26%)도 높은 수익을 거뒀다.

◆적립식, 회복 빨랐지만

물론 아무리 주가 고점에 가입했어도 매달 일정액을 쌓는 방식의 적립식 투자자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일정액을 쌓아두는 거치식과 비교하면 국내 펀드의 경우 35%포인트 수익률이 높았고, 해외펀드는 42%포인트 높았다.

예컨대, 2007년 10월 말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증권투자신탁'에 돈을 일시에 넣었을 때 원금의 52% 손해를 보고 있지만, 매월 일정액씩 넣었을 경우에는 원금을 거의 다 회복(마이너스 0.45%)했다. '신한BNPP봉쥬르차이나증권투자신탁2' 역시 거치식 투자로는 원금의 41%를 날렸지만, 적립식 투자로는 7%의 수익을 거뒀다. 주가가 하락했을 때마다 저가(低價)에서 매월 일정액씩 주식을 계속 취득함으로써 주식평균 매입 단가를 낮춘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주가가 높이 올랐던 2007년 10월 말에는 적립식 투자자보다는 거치식 투자자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환매할 때에도 적립식 투자처럼 분할해서

원금 손실을 보고 있는 펀드 투자자들로서는 월 2조원을 넘어선 펀드 환매(還買) 움직임이 불안하기만 하다. 원금 회복시점까지 더 움켜쥐고 있다가는 작년처럼 수익률이 다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다. 그렇다고 당장 환매하면 원금 회복만을 기다리며 참아온 2년이라는 세월이 아깝다. 이에 대해 최홍 ING자산운용 사장은 "세 번에 나눠 환매하라"고 조언했다. 환율·금리 등의 변수로 당장 주가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금 손실을 본 투자자라도 투자금의 3분의 1을 일단 환매해 현금화하고, 연말 주가 랠리를 지켜보고 나머지 3분의 1을, 그리고 출구전략(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는 정책)이 가시화되는 내년 3~4월 나머지 금액을 모두 인출하는 것이 방법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