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 기자의 시네마 오디세이] '불꽃처럼 나비처럼'

금지된 사랑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그 사랑이 매혹적일수록, 목숨은 더 위태롭다.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좋은 사례다. 그 사랑의 장애물이 집안 문제나 신분 차이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래서 '불꽃처럼 나비처럼'(감독 김용균)의 사랑은 크고 무겁고 위험하다.

'불꽃처럼...'은 사극영화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여기에 허구를 가미했다. 그 허구의 상상력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명성황후에게 숨겨진 사랑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역사 속의 명성황후는 비극의 여인으로 각인돼 있다. 기울어져 가는 왕조의 서민 출신 왕비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비장한 최후를 마쳤다. 또 외세와 맞서고, 시아버지 대원군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 여걸이었다. 수많은 드라마와 뮤지컬에서 명성황후는 날 선 여인으로 묘사됐다. '불꽃처럼...'은 그 고정관념에 과감하게 틈을 냈다. 명성황후에게 여인의 향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의상, 배경 등 사극영화 특유의 맛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영화는 '명성황후와 호위무사의 사랑'이라는 신선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한다. 인물의 감정의 흐름은 자주 끊어지고, 영화의 장르도 강화 들판의 억새풀처럼 흔들린다.

오프닝은 서정적이다. 명성황후가 아니라 민자영(수애)이 등장한다. 자영은 고종과의 결혼식을 앞두고 바다를 찾는다. 무사이면서도 신분을 숨기고 사는 뱃사공 무명(조승우)을 만난다. 무명은 붉은 해당화를 꺾어 바치고, 자영은 무명에게 댕기를 풀어준다. 운명적인, 비극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무명은 왕비에 대한 사랑 하나로, 우여곡절 끝에 궁중 호위무사가 된다. 왕비와 평민 호위무사의 사랑은 비현실적이다. 왕실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둘의 운명은 위험하다. 금지된 사랑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궁금해진다. 왕비와 호위무사는 사랑을 어떻게 지켜낼까. 그런데 갑자기 액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원군이 보낸 자객과 무명의 칼싸움이다. 액션신은 현란하다. 두 척의 배를 오가며 펼쳐지는 대결 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느닷없다. 세밀한 감정이 흘러야 할 순간, 액션이 호흡을 끊어버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와 액션을 수시로 넘나든다. 둘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진행되는 듯하다가, 뛰고 달리고 날며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면을 장식한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단조로운 멜로의 흐름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멜로라는 중심축까지 흔들리면 곤란하다.

왕비와 궁중 호위무사의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쌍화점'과 유사하다. 공민왕과 호위무사, 왕비 간의 사랑과 질투를 형상화했다. 정치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색, 계'의 인물들을 닮았다. '색, 계'에서는 일제 앞잡이가 된 중국인과 그를 암살하려다 사랑에 빠진 여성의 사랑을 그렸다. 금지된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각 작품의 메시지는 다르다. 그런데 '미인도'와 '색, 계'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는데 곤란을 겪지 않았다. 단일한 서사의 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사랑에 동의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불꽃처럼...'은 사극영화가 어디까지 허구적일 수 있는가 하는 숙제도 남긴다. 영화에서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명성황후 시해를 명령했다는 대사가 나온다. 무명이 궁으로 진입하려는 대원군의 대군사를 홀로 물리치고, 대원군에게 일갈하는 장면은 부자연스럽다. 멜로, 액션에 권력투쟁을 다룬 정치 사극으로 변질된다.

결과적으로 '불꽃처럼...'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멜로와 액션의 조합도 벅찬데, 여기에 역사의 고비에 서 있던 명성황후의 정치적 행위까지 다루려다 보니 본래의 의도를 잃어버렸다. 과유불급(지니침은 모자람만 못하다)이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