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고전(苦戰)의 길로

〈제6보〉(77~93)=잡은 돌 하나는 훗날 상대 집을 메우는 데 쓰이니까 2집이다. 대마끼리 얽힐 때, 특히 잡느냐 잡히느냐의 수상전일 때 그 가치는 훨씬 더 커진다. 돌통에 쌓이는 상대방 사석(死石)은 내겐 기쁨의 축적이다. 하지만 바둑 승패가 어디 사석으로만 결정되던가. 대마를 때려잡고도 요처(要處)를 놓쳐 바둑에 패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흑이 잇단 사석(捨石) 전법을 편 끝에 77로 때린 장면. 하변 수상전에 대한 박영훈의 집착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77은 흑이 이 바둑을 고전하는 원인이 됐다. 그 수론 '가'가 정답이었다. 자체로 요소이고, 그 뒤 흑 '나' 이후 모든 수가 우상귀 백의 삶을 추궁하는 팻감이 되기 때문. 78이 민첩해 중앙 흑이 갑자기 엷어졌다. 그리고도 하변은 여전히 미결(未決) 상태다.

79로 보강했는데도 백은 80으로 움직인다. 81은 백이 참고1도 7까지 넘으면 중앙을 장악, 하변 팻감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뜻. 무려 25분 만에 놓인 82가 호착이었다. 흑도 억지 차단을 시도했다간 참고2도처럼 되치기당한다. 결국 93까지 예상 못한 그림이 펼쳐졌고 결과는 백의 대성공. 흑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