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역전(逆轉)조짐

〈제9보〉(122~130)=백이 △로 끊은 순간 검토실에선 바둑 돌을 쓸어 담았다. 백의 승리가 결정됐다는 뜻. 하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역전이 태동(胎動)하기 시작한다. 1선에서 젖힌 흑△가 이 바둑을 뒤집는 봉화(烽火) 같은 한 수였다.

흑 △에 백 '가'로 받으면 흑은 '나'로 호구친다. 백은 패(覇)는 못 이기므로 결국 '다'로 물러서야 하는데, 우중앙 흑은 어느새 '라'의 연결고리가 마련돼 있다. 이것은 중앙 전투에서 엄청난 차이여서 백은 122로 굴복했다. 여기서 얻은 소득이 물경 5집. 당한 쪽에선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픈 일격이었다.

123, 125의 선수 행사를 거쳐 10분 만에 127로 지킨 수가 또한 냉철한 형세판단이 뒷받침된 최선책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127로는 참고1도 1로 움직이기 쉽지만 백 8때 흑의 응수가 두절된다. 참고2도 1로 모는 수 역시 12까지 흑의 실패. 하지만 아직도 흑으로선 덤이 부담스러운 형세인데, 여기서 운명의 130이 놓였다. 누가 봐도 두터운 자리. 왕하오양으로선 승리를 확인하는 기분으로 놓았을 일착인데, 이 한 수로 인해 바둑은 갑자기 격렬한 역류(逆流)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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