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아무리 나쁜 영화도 어느 한순간 좋은 때가 있다"

이탈리아의 공포영화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69) 감독은 묘한 느낌의 노인이었다. '수정 깃털의 새', '서스페리아', '페노미나' 등 숱한 호러영화에서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해낸 그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사람은 내면적으로 끔찍한 것을 감당할 힘이 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마스터클래스에서 그는 "첫 영화 찍을 때만 해도 배우는 감독에게 조종당하는 인형이라고 생각해서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페노미나' 촬영 당시를 연상하면서 "수백만 마리의 벌레가 필요해 6개월간 로마의 큰 별장에서 고깃덩어리를 썩혀 벌레들을 모았는데 이 벌레들을 스위스로 싣고 가다가 국경에서 통과시켜주지 않아 고생했다"며 독특한 경험들을 말했다. 다음 날 그를 또 만났다. 11일 오전 부산의 한 호텔에서 예정된 인터뷰. 그는 "본지아르노(Buongiorno)" 하고 이탈리아 말로 인사한 뒤 프랑스어로 질문에 답했다.

첫 질문은 "왜 공포영화에 천착하느냐"는 것. "이상한 것을 영화로 만드는 건 마치 내가 방 안에서 상상하는 끔찍한 것들의 파노라마를 묘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러 장르 감독이라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나의 꿈을 영화로 만들 뿐입니다."

최근작 '지알로'(2008)에서 에이드리언 브로디를 캐스팅한 계기를 묻자 그는 "레이 리오타가 LA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려 여행을 할 수 없게 됐다"며 "그러나 에이드리언을 선택한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브라이언 드 팔마나 쿠엔틴 타란티노, 로버트 로드리게즈 영화를 보면 확실히 그런 것을 느낀다"며 "감독이 남의 영화를 모방하는 것은 결국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므로 괜찮은 일"이라고 했다.

영화를 종종 피칠갑하는 아르젠토 감독은 전날 마스터클래스에서 "나는 피를 싫어한다"고 말했었다. "현실에서 저는 아주 정중하고 친구와도 사이 좋은 사람입니다. 현실에서는 피가 조금만 나도 끔찍하지만 영화에선 피의 축제를 벌여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무리 나쁜 영화에도 어느 한순간 카메라나 배우의 움직임이 좋은 때가 있으므로 모든 영화는 가치가 있다"는 아르젠토 감독은 차기작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 아, 한 가지. 여자 주인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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