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불꽃처럼 나비처럼

멜로의 서정성 깬 과도한 액션

금지된 사랑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그 사랑이 매혹적일수록 더 위험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좋은 사례다. 금지된 사랑에는 반드시 제약이 따른다. 그 장애물이 집안 문제나 신분 차이를 넘어서는 무엇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래서 '불꽃처럼 나비처럼'(감독 김용균)의 사랑은 크고 무겁고 위험하다.

사극영화 '불꽃처럼...'은 역사적 인물의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운다. 명성황후에게 숨겨진 사랑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조합했다. 그 허구의 상상력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역사 속의 명성황후는 우리에게 비극의 여인, 철의 여인으로 각인돼 있다. 기울어져 가는 조선 왕조의 서민 출신 왕비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많은 드라마와 뮤지컬에서 날 선 여인으로 묘사됐다. '불꽃처럼...'은 그 고정관념에 과감하게 틈을 낸다. '여걸' 이미지의 명성황후에게 '여인의 향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익숙한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의상, 배경 등 사극영화 특유의 맛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명성황후(수애)와 호위무사 무명(조승우)의 사랑 얘기다. 오프닝은 서정적이다. 명성황후가 아니라 수줍은 처녀 민자영이 등장한다. 자영은 고종과의 결혼식을 앞두고 바다를 찾는다. 무사이면서도 신분을 숨기고 사는 뱃사공 무명을 만난다. 무명은 붉은 해당화를 꺾어 바치고, 자영은 무명에게 붉은 댕기를 풀어준다.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명성황후와 호위무사의 사랑'이라는 멋진 상상력은 금방 무너진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마구 헤집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과도한 액션이다. 멜로 영화의 흐름은, 남녀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은, 칼바람에 자주 맥이 끊긴다.

무명은 왕비에 대한 사랑 하나로 목숨을 건다. 우여곡절 끝에 궁중 호위무사가 된다. 왕비와 평민 호위무사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다. 왕실의 입장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둘의 운명은 촛불처럼 위태롭다. 당연히 궁금증이 생긴다. 왕비와 호위무사는 자신들의 사랑을 어떻게 지켜갈까. 그런데 갑자기 액션 장면이 끼어든다. 대원군이 보낸 자객과 무명의 칼싸움이다. 액션신은 현란하다. 두 척의 배를 오가며 펼쳐지는 대결 신은 역동적이고, 그래서 더 느닷없다.

영화는 멜로와 액션을 수시로 넘나든다. 비밀스러운 연인의 절박한 사랑의 감정은, 뛰고 달리고 날며 칼을 휘두르는 액션 장면에 상처를 입는다. '액션 멜로'라는 낯설고 기이한 장르로 변질된다. 사극영화답게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야겠다는 강박관념 탓인지 모른다. 그러나 멜로라는 중심축까지 흔들리면 곤란하다. 여기에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명성황후의 정치적 행동이 추가된다. 보조 기능에 머물러야 할 액션과 드라마가 멜로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영화 장르의 정체성이 훼손된다.

'불꽃처럼...'은 사극영화가 어디까지 허구적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던진다. 무명이 궁으로 진입하려는 대원군의 대군사를 홀로 물리치고, 대원군에게 국가의 미래에 대해 일갈하는 장면은 부자연스럽다. 잦은 컴퓨터그래픽이 적절한 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애의 연기는,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의 다소의 어색함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다. 대작의 여주인공으로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승우는 순박하고 장난기 많은 청년, 순애보의 남자, 비정한 무사, 준엄한 민초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본 성격이 모호하다. 연기력이 아니라 캐릭터 설정의 문제다. 무명이 사랑의 징표인 붉은 댕기로 무장한 후 최후를 맞는 장면은 섬세하다.

결과적으로 '불꽃처럼...'은 욕심이 너무 많다. 멜로와 액션의 조합만 해도 벅찬데, 역사의 격랑에 휩싸였던 명성황후의 정치적 행위까지 다루다 보니 갈피없이 흔들리고 만 것이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