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마피아' 한국 바둑계 접수하나

명지대 바둑학과가 무서운 기세로 국내 바둑계를 석권해가고 있다. 프로기사를 비롯해 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 등 유관 단체, 바둑TV, 바둑 전문 인터넷 사이트, 학계, 바둑강사에 이르기까지 바둑과 관련된 모든 곳에서 온통 '주력 부대'를 형성 중이다. 점유율이 워낙 높아지면서 '명지대 마피아'란 말까지 등장했다.

바둑 사이트 '사이버오로'의 15개월차 인터넷 기자 이도윤(23·2009년 졸업)씨의 이야기. "입사 후 취재 요령을 가르쳐 준 사람은 경쟁업체인 타이젬의 정연주(28·2005년 졸) 선배였다. 최근 그녀가 유학을 떠나면서 나와 입학 동기인 김지은(25) 언니가 후임으로 왔는데 내가 바둑계 흐름을 조언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명지대 출신 프로 인터뷰 섭외 때 남들보다 훨씬 편하다. 바둑TV나 한국기원 어디를 가도 아는 동문들이 많아 다양한 도움을 받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성프로 국가단체전인 정관장배 올해 한국 대표는 총 5명 중 4명이 명지대 바둑학과 재학생이다. 바둑 인터넷 쪽엔 최진원(엠게임)·이경민(한게임)씨 등 무려 23명이 진출해 있다. 바둑강사 쪽도 이기룡(45)씨 등 33명의 대부대가 '접수' 중이다. 지금까지 배출된 졸업생 123명 중 약 7할인 85명이 각종 바둑 관련직에 포진한 상태. 웬만한 바둑행사 때마다 "명지대 동문회 같다"는 말이 나올 만도하다.

과(科) 동문회장인 이승현(29·2005년 졸업·바둑TV 캐스터)씨는 "바둑 관련 일자리가 생기면 동문들끼리 서로 기민하게 연락해준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강사그룹, 인터넷 기자그룹의 결속력이 특히 강한 편이다. 대학릴레이 대항전 때 출전했던 명지대 여성팀은 몇 차례 합숙훈련까지 실시했을 만큼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명지대 바둑학과는 1997년 예술체육대 체육학부 바둑지도전공으로 출발, 이듬해부터 별개의 과로 독립했다. 초기 한때는 프로기사들이 대거 입학 후 무더기로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폐과(廢科)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당시엔 '바둑의 학문화'에 대한 회의적 정서가 전문기사들 사이에 존재했다"는 게 이상훈 九단(36·2002년 졸업)의 회상. 그러나 이후 분위기가 바뀌면서 김주호 홍민표 등 중견기사들이 대거 입학, 현재 14명의 프로가 학업을 병행 중이다.

외국인 유학생도 12개국 20명이나 배출됐다. 스베타(29·러시아) 디아나(26·헝가리) 등이 프로기사로 뛰고 있고, 지라소핀(23)처럼 졸업 후 태국바둑협회 직원으로 들어가 모국 바둑계 개척에 힘쓰는 사람도 있다.

바둑학과 1회 졸업생이기도 한 김진환(43) 교수는 "미래 한국 바둑의 해외 거점 역할을 맡을 동량들"이라며 외국인 졸업생들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명지대 독주가 가져올지도 모를 역기능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배타적 세력화로 이어질 경우 자칫 분위기를 해치고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전남 영암 소재 대불대학이 2008년부터 체육학부로 첫 바둑 전공생을 뽑는 등 바둑학과 분야에도 복수(複數) 경쟁체제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바둑계는 대학 바둑학과와 입학정원 모두 더 늘어나야 한다는 입장. 정수현 九단은 "대학 태권도 학과가 총 60여개에 이르고 매년 3만명의 디자인 분야 학사가 배출되는 세상"이라면서 "전국 500여개 바둑교실은 물론 각종 바둑업종에도 학문적으로 무장한 전문인력이 공급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바둑학과 졸업생 수는 연간 20명이 채 안 되는 실정. 정 九단은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 창설을 주도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명지대는 2001년 석사과정에 이어 내년부터는 바둑학 박사과정도 개설하기로 했다. 한편 태국의 한 대학은 명지대 성공사례에 자극받아 바둑학과 도입을 서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