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주펀드 성적 좋지만 '묻지마 뒷북투자' 조심해야

지난 1년간 세계 경제는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위기'라며 공포감에 떨어야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전 세계 정부들이 공조해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을 공급한 덕분에,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빨리 저점을 통과하고 회복하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은 지난 4~5월 주식 등 자산시장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면서 어느 정도 위기 국면이 마무리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자산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거쳐 회복을 위한 반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 과연 자산가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거액 자산가들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명노욱 현대증권 압구정지점장에게 최신 트렌드를 들어봤다. 명 지점장은 연세대 경제학과(82학번) 졸업 후 지난1988년 현대증권에 입사해 상품개발부장, 고객자산운용부장, 강동지점장 등을 거쳤다.

◆조정장 이용한 재투자 노려

지난달 펀드시장에서 18조4000억원의 자금이 순유출(유출액에서 유입액을 뺀 것)된 것으로 나타났다. 명 지점장은 "펀드 수익이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다가 어느 정도 손실을 회복하자 펀드 탈출을 선택하는 추세가 뚜렷해졌다"며 "특히 코스피 1650을 일종의 환매 기준선으로 생각하고 이보다 높을 때 손실을 회복한 고객들은 적극적으로 환매에 나섰다"고 말했다. 1700 정도에서 더 오를 수 있는 폭은 제한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렇게 환매한 자금은 언제든 돈을 뽑아 쓸 수 있는 머니마켓펀드(MMF)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단기금융상품에 넣어놓고, 조정장에서 직접투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식형 펀드 가입자들 대다수가 수익률이 너무 형편없다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우리나라 주식형펀드는 그저 시가총액 비중대로 복제해서 투자하는 '무늬만 주식형펀드'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2차전지나 발광다이오드(LED) 등 일부 종목 상승률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죠." 좀더 안전하게 가려는 자금은 증권사 특판 회사채에 넣어 만기 때 고금리를 챙기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2년 만기에 연 7%대 금리를 주는 우량채가 반짝 상품으로 나왔는데 하루 만에 전량 소진되더군요." 주식 직접투자의 경우엔 녹색성장관련주 등 국가정책주를 주목하고 있다. "주식으로 돈을 벌려면 정부에 맞서지 말라는 투자 격언이 있죠. 정부가 강력하게 지원하는 정책 관련 주식들은 향후 충분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룹주펀드 뒷북 투자 조심을

그동안 관심 밖에 밀려 있던 그룹주펀드는 올해 대형주 장세를 타고 역전에 성공했다. 그룹주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그룹주펀드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명 지점장은 "지금 그룹주펀드에 일시에 목돈을 투자하는 건, 중국펀드 같은 전형적인 묻지마 뒷북 투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룹주펀드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정부의 간접 지원이나 다름없는 고환율 정책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 기업의 장점이 약해지고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명 지점장은 "그룹주펀드는 장기간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형 투자수단 선호

원금손실 위험을 진 만큼 고수익을 돌려주지 않는 주식형펀드에 실망한 앵그리머니(angry money·성난 돈)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명 지점장은 "우리나라는 펀드시장이 커지는 만큼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그리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상장지수펀드(ETF)처럼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주식형펀드와 엇비슷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TF는 연간 보수가 일반 펀드보다 훨씬 저렴하고, 매매 시 부과되는 거래세(0.3%)도 면제돼 비용상 이점이 높은 상품이다. 그는 "4분기에는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높으니, ETF처럼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어 환매를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고, 환매수수료가 없는 민첩한 상품으로 대처하는 것도 유리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선 사모(私募)펀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모펀드란, 50인 미만 투자자가 모여 맞춤형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출시되는 사모펀드는 수익을 올리는 경우에 성과보수를 주는 방식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