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길버트! 매력은 이제 됐고 실력을 보여줘"

지난달 화려한 취임식을 올린 올해 42세의 젊은 뉴욕 필 지휘자 앨런 길버트(Gilbert)는 곧바로 뉴욕 필을 이끌고 아시아 순방에 나섰다. 일본·한국·베트남·아랍에미리트 등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일정 가운데 두 번째 기착지가 서울 예술의전당이었다.

12~13일 이틀간의 뉴욕 필 내한공연은 신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로 시작됐다. 길버트의 취임과 더불어 상임작곡가로 임명된 핀란드 작곡가 매그너스 린드버그의 〈엑스포(Expo)〉는 제목만큼이나 역동적이었다. 질주하는 현악과 차분하면서도 장중한 금관의 대비를 통해 미묘한 긴장을 빚어내고,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가운데에도 빛나는 광채를 뿜어내며 희망을 예시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한 작곡가가 한국 초연을 마친 뒤 무대에 올라와 인사하는 모습에서, 사뭇 달라진 악단의 진취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임 자체가 곧바로 성공이 아닌 건, 대통령뿐 아니라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첫날 베토벤 교향곡 7번은 고지식할 만큼 명확하게 박자를 지키는 바람에, 오히려 '리듬의 향연'으로 불리는 곡 특유의 매력이 반감됐다. 급정거나 급발진을 삼가는 대신, 안전속도를 지키며 강약의 변화를 통해 야무지고 빈틈없는 코너워크를 선보이려 한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표면 위로 활력이 끓어오르고 폭발하기보다는, 때때로 수심 깊이 잠복하거나 침잠했다.

둘째 날의 말러 교향곡 1번도 세부적 디테일에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단락과 단락을 이어주는 매듭이 다소 헐겁고 느슨했다. 특히 브루노 발터와 번스타인까지 뉴욕 필이 20세기 말러 중흥의 주역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지나치게 대응 매뉴얼에 충실한 탓에 융통성이 떨어지는 행정부를 보는 듯했다.

둘째 날의 주역은 오히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독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침머만이었다. 지난해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베토벤을 선사했던 침머만은 이날은 거꾸로 왼발로 박자를 밟아나가고 온몸을 이용해 격정적인 브람스를 들려주며 '처가(妻家)'인 한국 팬들의 박수를 한몸에 받았다.

취임 초기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을 감안하면, 뉴욕 필의 첫 순방은 희망과 불안 요소를 동시에 보여줬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길버트에게도 같은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른다. "매력은 이제 됐고 실력을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