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선택] 외계인은 왜 인간에 핍박받으며 살게 됐을까

'트랜스포머'가 지루했던 것은 헤비메탈 음악에도 졸린 것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든 음악이든 장르 위에 흙을 덮어 장르를 화석화하는 창작물은 화려하고 웅장해도 졸릴 뿐이다. 그런 점에서 '디스트릭트 9(15일 개봉)'은 기대하지 않았으나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이다. 게다가 감독 배우 모두 처음 접하는 사람이어서 신선함이 더 하다.

거대한 외계 비행체가 28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나타난다. 이 비행체는 지구에 불시착한 것으로, 외계생명체들은 연료와 식량이 떨어진 상태다. 인간들은 이 외계인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디스트릭트 9'이라는 곳에 임시 수용하지만, 외계인 구역 내 범죄가 끊이지 않자 새 수용소로 옮기려 한다. 이 실무를 맡은 비커스(샬토 코플리)는 외계인 거주지역에서 피부에 의문의 물질이 닿은 뒤 외계생명체로 변이된다. 반 외계인이 된 비커스가 외계인 무기 작동의 열쇠임을 깨달은 인간들이 그를 뒤쫓자, 비커스는 디스트릭트 9으로 달아나 숨는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은 무기력하다. 그들은 인간 앞에 무릎 꿇리며 집을 수색당하고 또 걷어차인다. 이것은 이 영화가 겨냥한 정치적 풍자를 겸하고 있다. 영화 속 디스트릭트 9이 하필 남아공에 설치된 것은, 남아공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 시기에 케이프타운 내 백인전용 주거구역이었던 '디스트릭트 6'를 패러디한 것이다. 1970년대 이곳에서는 흑인 6만여명이 쫓겨났었다. 얼마 전부터 시내버스에 '외계인 승차금지', 카페에 '외계인 출입금지' 포스터가 붙곤 했던 것 역시 이 영화 마케팅이다. 또한 외계 비행체가 수십년간 시동이 꺼진 채 지구 상공에 머물고 있어 사람들이 더 이상 신기해하지 않는다는 식의 상상력 또한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방식을 차용해 찍은 이른바 '모큐멘터리(mock documentary)'다. 카메라는 계속 흔들리고 화면은 늘 선명하지 않고 뿌옇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화면에 사실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이 영화 CG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이 영화 제작비는 3000만달러로 할리우드 SF영화치곤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다 보니 시각적 피로감이 쌓이는 단점은 있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이며, 감독은 남아공 출신의 닐 블롬캠프다.

▶전문가 별점

― 이상용·영화평론가 ★★★★

오랜만에 만나는 SF 상상력의 친숙한 즐거움과 이야기의 새로움.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 ★★★★

형식과 소재와 야망이 이야기를 잡아먹지 않은 흔치않은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