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날아라 펭귄'
입력 : 2009.10.18 15:54
| 유쾌한 웃음 속 가시 … '씁쓸한 풍속화' |
펭귄은 날지 못한다. 날개가 있는데도 그렇다. 헤엄만 칠 줄 안다. 무려 4000만년 전부터 그랬다. 과학자들이 가장 오래된 펭귄화석을 분석한 결과다. 위키디피아 백과사전에는 '펭귄(penguin)은 펭귄목 펭귄과에 속하는 날지 못하는 새의 총칭'이라고 돼 있다. 서식지는 남반구다. 남극,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갈라파고스 제도에 분포한다.
그러나 펭귄은 대한민국에도 산다.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은 우리 시대 펭귄들의 초상화다. 영화에서 펭귄은 혼자 사는 40대 가장을 가리킨다. 아내와 두 아이를 미국에 조기유학 보낸 샐러리맨이다. 그는 비행기 티켓값이 없어 미국으로 날아가지 못한다. 실제로는 펭귄은 내 자신, 우리 이웃으로 확장된다. 소방관이 꿈이면서도 학원 공부에 내몰리는 아홉 살 초등학생 승윤, 사회 적응에 힘겨워 하는 채식주의자 직장 새내기 주훈, 은퇴한 뒤 황혼 이혼의 위기에 처한 60대 권 선생 등이다. 모두 우리 시대 소시민들이다.
감독은 그들이 사는 모습을 마치 TV의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스케치한다. 그래서 '날아라 펭귄'은 2009년의 솔직한 풍속화로 남는다.
'날아라 펭귄'의 인물들은 각 세대의 남루한 삶을 대표한다. 네 명의 펭귄은 각자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에 발목이 묶인 인물들이다. 공간 또한 상징적이다. 영화는 아파트와 사무실을 쳇바퀴처럼 돌며 진행된다. 그 공간을 벗어난다고 해도 기껏해야 영어학원, 술집, 노래방이다. 가장 일탈된 공간은 동해안 바닷가다. 그곳에서도 엄마는 아이 영어유학 문제로 통화하느라 바쁘다.
'날아라 펭귄'은 사회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물의 성격과 삽화가 그렇다는 얘기다. 본격 리얼리즘 영화처럼 정색을 하고 현실을 해부하거나 고발하지 않는다. 차라리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에 가깝다. 가볍고 유쾌하다.
감독의 이러한 선택은 꽤 효과적이다. 인물들은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바로 나, 옆집 사람, 아니면 직장 동료 누구의 얘기로 느껴진다. 각 삽화의 사실성도 뛰어나다. 엄마는 졸려서 눈 비비는 아이를 붙잡고 자정이 넘도록 선행학습을 시키고, 늦게 퇴근한 아빠는 그런 엄마를 나무라고, 엄마는 또 그런 아빠를 "세상 물정 모른다"고 타박한다. 펭귄 아빠는 회사 화장실 변기에 쭈그려 앉아 와이셔츠 단추를 단다.
영화는 네 명의 일상을 따라간다. 형식은 자유롭다. 네 개의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연결된 형식이다. 스토리만 보면 심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무겁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독수공방하던 권 선생이 딸의 재치로 아내 생일 파티를 해주면서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하고 억지로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들이 '약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승윤의 집에서는 엄마가 아이 교육에 관해 거의 전권을 행사한다. 권 과장은 학비가 부족하니 아파트를 팔고 아예 오피스텔로 가라는 아내의 요구를 받는다.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감독은 이런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처리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페미니즘 영화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사회 풍자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임순례 감독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주목해 왔다. 데뷔작 '세 친구'에서는 방치된 젊은이들, '와이키키 브러더스'에서는 지방 업소를 전전하는 밴드의 남루한 삶과 희망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비인기종목인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들의 꿈과 도전을 그려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날아라 펭귄'은 전작들보다 한결 밝아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눈에 띄는 변화다. 그러나 삶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과 따뜻하면서도 원숙한 시선은 그대로다.
당대 사회현실을 반영한다고 해서 반드시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날아라 펭귄'이 좋은 사례다. 보여주는 것만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임순례 감독은 유쾌한 웃음 속에 가시가 숨어있는 영화를 깔끔하게 빚어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작비 지원을 받았다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은 옥에 티로 남는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
그러나 펭귄은 대한민국에도 산다.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은 우리 시대 펭귄들의 초상화다. 영화에서 펭귄은 혼자 사는 40대 가장을 가리킨다. 아내와 두 아이를 미국에 조기유학 보낸 샐러리맨이다. 그는 비행기 티켓값이 없어 미국으로 날아가지 못한다. 실제로는 펭귄은 내 자신, 우리 이웃으로 확장된다. 소방관이 꿈이면서도 학원 공부에 내몰리는 아홉 살 초등학생 승윤, 사회 적응에 힘겨워 하는 채식주의자 직장 새내기 주훈, 은퇴한 뒤 황혼 이혼의 위기에 처한 60대 권 선생 등이다. 모두 우리 시대 소시민들이다.
감독은 그들이 사는 모습을 마치 TV의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스케치한다. 그래서 '날아라 펭귄'은 2009년의 솔직한 풍속화로 남는다.
'날아라 펭귄'의 인물들은 각 세대의 남루한 삶을 대표한다. 네 명의 펭귄은 각자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에 발목이 묶인 인물들이다. 공간 또한 상징적이다. 영화는 아파트와 사무실을 쳇바퀴처럼 돌며 진행된다. 그 공간을 벗어난다고 해도 기껏해야 영어학원, 술집, 노래방이다. 가장 일탈된 공간은 동해안 바닷가다. 그곳에서도 엄마는 아이 영어유학 문제로 통화하느라 바쁘다.
'날아라 펭귄'은 사회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물의 성격과 삽화가 그렇다는 얘기다. 본격 리얼리즘 영화처럼 정색을 하고 현실을 해부하거나 고발하지 않는다. 차라리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에 가깝다. 가볍고 유쾌하다.
감독의 이러한 선택은 꽤 효과적이다. 인물들은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바로 나, 옆집 사람, 아니면 직장 동료 누구의 얘기로 느껴진다. 각 삽화의 사실성도 뛰어나다. 엄마는 졸려서 눈 비비는 아이를 붙잡고 자정이 넘도록 선행학습을 시키고, 늦게 퇴근한 아빠는 그런 엄마를 나무라고, 엄마는 또 그런 아빠를 "세상 물정 모른다"고 타박한다. 펭귄 아빠는 회사 화장실 변기에 쭈그려 앉아 와이셔츠 단추를 단다.
영화는 네 명의 일상을 따라간다. 형식은 자유롭다. 네 개의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연결된 형식이다. 스토리만 보면 심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무겁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독수공방하던 권 선생이 딸의 재치로 아내 생일 파티를 해주면서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하고 억지로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들이 '약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승윤의 집에서는 엄마가 아이 교육에 관해 거의 전권을 행사한다. 권 과장은 학비가 부족하니 아파트를 팔고 아예 오피스텔로 가라는 아내의 요구를 받는다.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감독은 이런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처리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페미니즘 영화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사회 풍자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임순례 감독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주목해 왔다. 데뷔작 '세 친구'에서는 방치된 젊은이들, '와이키키 브러더스'에서는 지방 업소를 전전하는 밴드의 남루한 삶과 희망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비인기종목인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들의 꿈과 도전을 그려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 '날아라 펭귄'은 전작들보다 한결 밝아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눈에 띄는 변화다. 그러나 삶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과 따뜻하면서도 원숙한 시선은 그대로다.
당대 사회현실을 반영한다고 해서 반드시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날아라 펭귄'이 좋은 사례다. 보여주는 것만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임순례 감독은 유쾌한 웃음 속에 가시가 숨어있는 영화를 깔끔하게 빚어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작비 지원을 받았다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은 옥에 티로 남는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