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재테크팀장의 알뜰 리포트] 결국 일반운전자 보험료 부담만 늘었다

지난 8월 정부의 특별 사면으로 152만여명이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대전에 살고 있는 40대 회사원 A씨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술먹고 운전하다가 면허 정지 처분을 당했던 그가 정부로부터 광복절 특사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특별사면이 그에겐 부메랑이 되었다. A씨는 최근 회사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를 당한 오토바이 운전자는 전치 12주 진단을 받았다. 광복절 특사로 다시 운전대를 잡은 그는 지금 형사처벌까지 받을 형편에 놓여 있다.

역대 정부가 툭하면 단행하는 선심성 교통사범 특별사면조치가 운전자들의 안전 불감증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느새 교통법규 위반자들을 구제해 주는 것이 연례 행사처럼 굳어지면서 경찰 단속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운전자도 늘고 있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5~09년까지 5년간 음주운전 때문에 두 번이나 사면받았던 운전자는 730명에 달했다. 이들은 음주운전을 했다가 사면을 받았으면서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또다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지난 8월 광복절 특사 때 면허를 새로 딴 후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경찰 단속에 걸린 운전자도 한 달 만에 643명이나 됐다.

문제는 이들의 안전 운전 불감증뿐 아니다. 대규모로 자주 단행되는 특별사면의 부작용으로 교통사고가 오히려 늘고, 이로 인해 보험회사들의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나고, 그 결과 일반 운전자들이 내는 보험료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다수 국민이 특별사면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비용 최대 1조원"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사면 시행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595만여명이 대대적인 사면을 받았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1998년, 2002년) 2회, 노무현 정부(2005년) 1회 사면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작년과 올해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이 이뤄졌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 총 2400만여명의 교통법규 위반자가 사면 혜택을 봤다. 역대 대통령들이 단골 메뉴로 '베풀어온' 특별사면으로 인해 우리 사회 전체가 치른 경제적인 비용이 무척 컸다. 1995년과 1998년, 그리고 2002년에 실시된 정부의 특별사면 조치 이후에는 여지없이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급증했다. 특별사면이 교통법규 위반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안전 불감증을 더욱 키운 것이다.

다만 2005년 사면 조치 이후인 2006년에는 전체 교통사고 건수가 다소 줄었다. 그러나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 건수는 예년 평균 대비 늘어나 13.2%(약 3500건)나 증가했다. 권영선 카이스트(KAIST) IT경영학과 교수는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 정책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의 전형"이라며 "운전자들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도 전에 용서받다 보니 이를 당연시 여기게 되어 결국 건전한 운전 문화만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대규모 사면이 오히려 대다수 일반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교통사범에 대한 사면 조치로 우리가 치러야 하는 경제적인 비용이 사면조치 1회당 최대 1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1조원은 난폭 운전자들이 사면 후 운전을 하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교통사고 건수를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한 수치다.

◆풀어줬더니 역시나 사고낸다

지난해와 올해 8월 단행된 이명박 정부의 특별사면도 후유증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 9월에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지난 1월(손해율 75.7%)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다만 1월은 도로가 얼어붙는 겨울이란 특성상 1년 중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지난 9월에 최근 2년새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났다고 말할 수 있다. 9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75.6%로, 전년 동월 대비 7.8%포인트나 늘어났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고객들에게 내준 보험금을 고객이 보험사에 낸 보험료로 나눈 값을 말한다. 손해율이 높을수록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보험사들은 미래에 얼마나 교통사고가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정 손해율을 70.7%로 가정하고 보험료를 받는다. 그런데 지난달처럼 손해율이 70.7% 기준선을 뚫고 치솟으면 보험사들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향후 자동차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이어진다. 지난 2008년 회계연도(2008.4~2009.3)의 1년간 손해율은 69.8%로,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장 차 보험료를 내려야 한다는 운전자들의 원성도 높았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갑자기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기 회복 기대감으로 차량 운행이 늘어난 것도 교통사고가 늘어난 원인이지만,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특별사면이 이뤄지면서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난폭 운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통상 보험회사들의 손해율이 1%포인트 올라가면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보험료도 1% 안팎 비싸진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약 1800만명)의 자동차 보험료 평균이 65만원(보험개발원 추정) 정도이니까 약 6500원 정도 부담이 무거워지는 셈이다. 과거에도 특별사면 이후 손해율이 올라가고 보험료 인상이 뒤따랐다.

◆사면보다 엄벌해야 진짜 은전(恩典)

정부의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에 대한 일반 운전자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15년째 무사고 경력을 기록하고 있는 노경숙(62)씨는 "아무리 내가 방어운전을 한다고 해도 음주운전자를 만나면 별 수 없지 않으냐"며 "우리나라차럼 콜택시와 대리운전이 발달한 나라에서 음주운전을 한다는 건 어떤 이유로든 용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특별사면이 암묵적으로 음주사고를 용인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