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나요… 뒤늦게 환호하는 야속한 세상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 권진규(權鎭圭·1922~1973)를 재조명하는 《권진규전(展)》 개막식이 19일 오후 3시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렸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이 일본 작가 이외의 아시아 작가 중 개인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일본의 미술 명문사학인 무사시노미술대학과 동시에 개최했고,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전시가 끝나면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12월 21일부터 2010년 2월 28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권진규전》은 무사시노미술대학 조각과가 올해 개교 80주년을 맞아 이 학교 출신 조각가 중 위대한 예술세계를 보여준 인물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무사시노미술대학이 권진규에 대한 연구와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제안해 동반전시가 이뤄졌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권진규는 어려서부터 조각에 재능을 보였고, 1949년 무사시노미술대학 조각과에 입학했다. 1953년 일본 미술전인 이과전(二科展)에 출품해 입상했고, 테라코타(초벌구이 조각) 작업을 통해 후배들에게 깊은 영향을 줬다. 그는 테라코타 제작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돌도 썩고 브론즈도 썩지만 고대의 부장품이었던 테라코타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잘 썩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진규는 1959년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의 구상 조각은 당시 미술계에 몰아친 서구 추상표현주의에 가려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권진규는 외로움과 병고에 시달리다 1973년 서울 동선동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인물상들은 극도로 절제된 형상 속에 역동성과 구도자적인 종교성을 함께 보여준다. 길고 가느다란 목은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과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권진규의 작품들은 영원히 살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빛나고 있었다. 2층 전시장에 전시된 〈지원의 얼굴〉 등 30여점을 들여다보는 관람객들은 마력처럼 빨아들이는 작품의 흡인력으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무사시노미술대학 동기 센나 히데오씨를 비롯해 작가의 동생인 권경숙 권진규기념사업회 명예회장과 이번 전시에 도움을 준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 등도 전시장을 둘러봤다.

한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자동차로 40분쯤 달려 도착한 무사시노미술대학 전시장은 보다 농밀하게 작가를 느낄 수 있었다. 무사시노미술대학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 권진규의 졸업작품 〈나부(裸婦)〉를 포함해 두 나라를 오가며 모은 작품과 자료 100점을 선보였다.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권진규는 두 전시장을 통해 30여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권진규는 오늘을 예감하듯 생을 마감하기 1년 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진실의 힘의 函數關係(함수관계)는 歷史(역사)가 풀이한다."(조선일보 1972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