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백호, 붓으로 낭만을 노래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배운 적도 없는데 혼자서요. 모네의 그림을 좋아해요. '수련'같은 그림은 따라 그려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해도 모네처럼은 안 되더군요.(웃음)"

1994년 발표한 곡 '낭만에 대하여'로 수많은 중년 남성들의 심금을 울렸던 가수 최백호(59)씨가 이제 붓을 들고 캔버스 위에서 낭만을 노래한다.

21~27일 서울 인사동 공갤러리에서 첫 그림 전시회를 갖는 최씨는 19일 기자와 만나 "내게 그림 그리기란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하셨어요. 저는 어머니 말씀을 안 듣고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 안 하고 기타 치며 돌아다녔지요. 스무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죄의식과 함께 '시간이 나면 꼭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겼어요. 가수가 되고 나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몇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우연히 최씨가 그린 그림들을 본 이두식 홍익대 미대 교수가 "전시회를 열어도 되겠다"면서 그에게 용기를 줬다고 한다.

이번에 그가 선보이는 작품 26점은 자화상 1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무'를 소재로 한 아크릴화다.

"어릴 때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시골 학교 사택에서 살았어요. 집 앞에 큰 벚나무 세 그루가 서 있었는데 얼마 전 가 보니 집은 허물어졌지만 나무는 그대로 있더군요. 그래서 나무가 좋아요. 변하지 않는 존재라서."

요즘 그는 여의도 자택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매일 3시간 이상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주로 아침이다. 그 무렵의 빛이 좋기 때문이란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죠. 노래를 부를 때는 복잡해지거든요. 사람들의 시선과 카메라가 신경쓰이고, 가사도 생각해야 하고….피곤한 작업이지요." 잠깐 생각하더니 그는 덧붙여 말했다. "전시회를 갖는다는 건…어쩌면 무대에 서는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림으로 데뷔하는 셈이라 상당히 떨리는데, 떨리는 그 느낌이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