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생존권(生存權)

〈제5보〉(50~61)=추쥔의 대국 자세는 모든 프로들이 기억할 만큼 독특하다. 언제나 바둑판에 얼굴이 닿을 듯 구부린 채 수읽기에 빠져드는데, 그 진지함에 질려 아무도 웃음을 터뜨리지 못한다. 평소 생활도 "잠 자는 시간 외엔 24시간을 바둑과 함께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성실하다는 소문. 이 같은 생활 자세는 추쥔이 지난해 이광배서 톱스타 구리(古力)를 꺾고 우승, 중국 정상급으로 올라서는 디딤돌로 작용했다.

50도 용의주도한 수였다. 자칫 참고1도 1로 욕심을 냈다간 8까지 쓰레기 몇 점 잡고 망한다. 이제 와서 흑은 51로 귀에서 살자고 할 수밖에 없다. 52 역시 추쥔의 조심성을 보여주는 수. 참고2도 1로 차단하고 싶으나 흑 2가 선수로 들어 백이 순식간에 망한다. 일방적으로 우세한 지역인 듯해도 도처에 지뢰가 묻혀 있는 셈.

55까지 상대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인정한 백, 선수를 뽑아 56으로 먼저 신천지에 발을 디뎠다. 60까지 우상귀 흑진을 깨고 상변을 넘는 형태가 됐다. 좌상귀에서 중앙으로 뻗어나온 흑 일단의 약점도 은근히 노리고 있다. 흑의 다음 행선지는 61. 그러나 이 수는 흑의 열세를 좀 더 고착화시킨 문제의 한 수로 도마 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