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의 시네마 업데이트] '파주'

비밀을 간직한 형부-진실을 찾는 처제의 사랑 이야기

　꽤 오랜 만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의 조감독을 맡았고, 2003년 '질투는 나의 힘'으로 데뷔한 박찬옥 감독이 두 번째 영화 '파주'를 만들었다.

'질투는 나의 힘' 이후 무려 7년 만의 신작이다. 언니의 남자를 사랑한 소녀와 아내의 동생을 사랑한 남자, 즉 형부와 처제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 통상적인 개념에 비추면 매우 도발적인 이 사랑은 끈적이고 질척이는 대신 미스터리한 비밀을 가슴 한 복판에 심어놓고 있다.

학생운동을 하던 신학대학생 중식(이선균)은 수배를 피해 파주에 온다. 친한 형이 목사로 있는 교회 봉고차를 운전하고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부모를 여읜 동네 여자 은수를 만나 결혼도 한다. 하지만 은수의 동생 은모(서우)는 중식이 별로다. 그래서 언니의 결혼 후 가출을 하는데, 그 사이 언니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만다. 겨우 중학생이던 은모에게 형부 중식은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 가족으로 함께 살게 된지 4년. 중식이 다시 인권 운동을 시작해 유치장에 갇히자 은모는 갑자기 인도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파주'가 지닌 매력은 시간이다. 중식과 은모가 함께 하는 7년간의 시간은 일직선이 아니라 뒤틀려있다. 3년 만에 인도에서 돌아온 이십대의 은모와 철거현장에서 농성하며 한결 같이 살고 있는 중식. 현재의 그들이 마주하는 순간 영화의 시간은 7년 전 그리고 4년 전의 곳곳으로 돌이켜진다. 왜 은모가 갑자기 여행을 떠났는지, 중식은 왜 은모를 기다렸는지. 박찬옥 감독은 대범하게 시간을 뚝뚝 떼어내는 듯하더니 냉정하고 조용해 보이는 겉모습 안에서 미친 듯이 들끓고 있는 그들의 감정을 예리한 퍼즐처럼 맞춰나간다.

그리고 그 안에 비밀이 있다. 겉으로는 촌스럽고 지루해 보이는 파주. 실은 언제부터인지 지역개발의 이권을 쥐려는 큰 손들에 의해 희뿌연 먼지로 뒤덮이게 된 파주. 그곳에 돌아온 은모가 알게 된 건 중식이 지금껏 언니의 죽음에 대해 뭔가 숨겨왔다는 것이다. 은모는 중식을 의심하며 진실을 찾고자 매달리지만, 과거를 더듬을수록 느껴지는 건 중식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다. 의심과 불신 속에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사랑. 그럴수록 차마 더 꺼내 보일 수 없는 비밀과 감정들. 그걸 안고 살아가는 무거운 현실의 모습에 상투적인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파주'는 차갑고 예민한 잔상을 남긴다.

외모는 얌전하지만 내면은 온갖 복잡함에 곧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고 있는 소녀처럼. 무심한 표정, 조용한 말투 속에 감춘 격정을 한순간에 터뜨리는 '문제적 인간들' 중식과 은모 역의 이선균과 서우 모두 각자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