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여라 천추태후의 금빛 불심(佛心)

불심(佛心) 가득한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짙푸른 감지(紺紙) 위에 금가루로 써내려간 사경(寫經)이 유독 눈길을 끈다. 현존하는 고려 사경 중 가장 오래된 〈대보적경(大寶積經)〉권32(1006년)이다.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가 정부(情夫) 김치양(金致陽)과 함께 발원한 것으로, 큼직한 글씨가 정갈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앞 부분에 붙인 변상도(變相圖·사경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에는 세 명의 여인 보살들이 꽃을 뿌리며 공양하고 있고, 표지에는 활짝 핀 연꽃이 그려져 있다. 고려시대 금자(金字)대장경으로는 유일한 이 작품은 1388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한국 불교미술의 찬란한 발자취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일본에서 열리고 있다. 일본 교토(京都) 오타니(大谷)대학 박물관에서 11월 28일까지 계속되는 《기원과 조형-한국 불교미술의 명품》 특별전은 대보적경 외에도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의 저술 '판비량론(判比量論)' 필사본 등 일본 중요문화재 5점을 비롯해서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 4점, '비로자나불도'(고려 13세기), '아미타삼존불감'(조선 1689년) 등 일본 각지의 박물관과 사찰·개인이 소장한 불교 명품들이 총망라된 전시다. 오타니대가 지난 2007년 동국대와 교류 협정을 맺은 후 첫 번째 결실로 열리는 전시회로, 동국대박물관(관장 최응천)의 불교유물 27점과 동국대도서관 소장 조선전기 전적 등 한국에서도 28점이 출품됐다.

특히 오타니대 박물관이 소장한 희귀 전적류가 한꺼번에 공개돼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초서체로 흘려 쓴 '판비량론' 필사본은 일본인 승려가 신라에서 베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지난 2002년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히로시마대 명예교수가 신라의 언어와 한자 발음이 적혀있는 각필(角筆) 흔적을 발견해 신라인이 만든 것임이 확인됐다.

현재 판비량론의 완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전체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이 사본이 유일하다. 필사본 말미에 고묘(光明) 황후의 사인(私印)이 찍혀 있어 왕실 소장품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원효대사의 일본에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을 찍어낸 것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인 고려대장경 판본(오타니대 소장)도 출품됐다. 고려 우왕 7년(1381년)에 찍어 여주 신륵사에 봉안했다가 조선 태종 14년(1414년) 일본 국왕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오타니대 소장 고려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판각된 재조대장경으로 587상자(함)에 4995첩이 보관돼 있다. 현재 고려대장경판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지만 이를 찍어낸 고판본은 한국에 없고 모두 일본에 있다.

조선시대 전라남도에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이 제작한 '아미타삼존불감'도 처음 공개됐다. 지붕이 있는 팔각당형불감으로, 앞면의 문짝을 열면 감실의 연화좌 위에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나타나고, 좌우에 관음보살입상과 세지보살입상이 대칭으로 배치돼 있다. 일본 교토의 사립박물관인 고려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