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외로움

 

〈제9보〉(115~132)=추쥔은 외톨이다. 외국 땅에 나와서도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밥도 홀로 떨어져 먹고, 식사 후엔 자그마한 체구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뚱거리며 혼자 산책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연민의 정이 불끈 솟곤 한다. 하지만 어차피 바둑은 혼자 하는 것. 고독함은 승부사들의 평생 숙명이다. 최근 추쥔을 삼성화재배 4강까지 끌어올린 동력(動力)은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순식간에 좌중앙 흑 대마가 고립됐다. 사람뿐 아니라 판 위의 바둑돌들도 자주 외로움을 탄다. 돌들의 ‘주인’은 그 순간 또 얼마나 외로울까….출구(出口)라곤 115, 117쪽뿐인데, 118 급소 일격을 당하니 휘청한다. 집 없이 쫓기는 흑 대마 전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119 끊음은 타개의 실마리를 구해 보려는 안간힘.
124 빈삼각은 행마법이고, 125 코붙임은 고심 끝에 놓인 버팀수다. 흑은 참고도 백 1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라면 12까지 탈출하는 형태. 132까지 완전 포위됐다. 하지만 백의 손길에 살기(殺氣)는 느껴지지 않는다. 칼에 피 안 묻히고 이기는 게 진정한 고수(高手)라던가. 흑의 다음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