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전 펀드팀장의 '재테크 파일'] 증권사, 기업 4분기 실적전망 20% '과포장'

증권사들의 4분기(10~12월) 상장기업 실적 전망이 다른 분기보다 큰 폭으로 과장되어 있어서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한다는 경보가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4분기에는 기업들의 마케팅 비용 등 영업비용 지출이 급증하지만 증권사들이 이러한 변수를 적절히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상장기업들의 깜짝실적 발표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심리가 냉각된 이유 중 하나가 4분기에 기업 실적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추정하고 있는 339개 상장사의 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20조8473억원으로 3분기보다 0.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 증가율이 높았던 2분기(89.2%)나 3분기(33.2%)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준이다.

그런데 이 전망치마저도 크게 부풀려져 있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전망치를 20%가량 확 낮춰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대평가된 4분기 실적 전망

애널리스트들은 통상 자신들이 분석하고 있는 상장사들의 실적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실적 전망치를 비관적으로 추정해 기관투자자들에게 매수 타이밍을 놓치게 한 부담이 반대의 경우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사라'고 권해야 영업이 되는 증권사 직원의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목표주가나 실적은 어느 정도는 깎아서 봐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4분기 장밋빛 실적 전망은 유독 심하다. 대우증권이 지난 2005년 이후 분기별 증권사 애널리스트 실적 추정치와 실제 기업들의 실적 발표치를 비교 분석해본 결과, 2008년 4분기 기업들의 실제 실적은 당시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추정치보다 무려 59%나 낮았다. 2008년 4분기의 경우 내로라하는 세계 경제학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는 것을 변명거리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2005~2007년 4분기 실적 전망치를 분석해봐도 마찬가지다. 2007년의 경우 상장사들의 실적 발표치는 애널리스트들 추정치보다 19.9% 낮았다. 같은 해 2분기(3.9%)나 3분기(11.5%)보다 오차폭이 더 심했다.

올해 증권사들은 339개 상장종목의 4분기 영업이익을 약 21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20% 안팎으로 부풀려진 4분기 이익 전망치를 고려하면 4분기 영업이익은 21조원이 아니라 16조7000억원 수준이라고 대우증권은 분석했다. 이 경우 이익증가율 둔화세는 현재 주식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실적 거품을 제거할 경우 3분기 대비 4분기 영업이익 감소율이 0.8%가 아니라 20.8%가 되기 때문이다. 작년 3분기 대비로도 294% 증가가 아니라 226% 증가로 68%포인트 증가폭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4분기 이익이 특히 부풀려지는 이유

4분기 실적이 과대 평가되는 이유를 분석해보면, 우선 연말에 상장기업들이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하지 못한 성과급 지급, 마케팅비용, 판관비, 배당지급액, 파생상품 평가손실, 신규 설비투자분 등을 대거 반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작년 4분기 증권사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 영업적자를 2195억원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영업적자폭은 예상치의 4.3배 수준인 9371억원에 달했다. 마케팅비용이 3분기 대비 9074억원이나 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금융지주도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와프(CDS) 투자손실을 연말에 반영하면서 시장 예상치(328억원 적자)의 20배에 달하는 664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달 21일 LG전자가 3분기에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이후 주가가 급락한 이유 역시 4분기에 마케팅비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회사측 설명 때문이었다. 마케팅비용을 얼마로 책정할지 여부는 애널리스트들이 알아내기 어려운 상장기업 '최고경영자의 영역'이다. 한국 정부를 비롯해 각국 정부들이 연말 환율 관리에 나서는 점도 기업들의 외화자산 평가이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애널리스트들의 관성적인 낙관론도 실적 오차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175개 기업 중 영업이익이 애널리스트 전망치를 넘어선 기업은 90개로, 어닝서프라이즈(깜짝실적발표) 비율이 51%에 달했다. 2분기에 이어 3분기까지 2분기 연속 어닝서프라이즈 기업들이 늘다 보니 실적 상향조정 관성이 4분기 전망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영업이익증가율 역시 세계 경제의 더블딥(double dip·경기가 회복하다가 다시 침체하는 현상) 우려가 가시지 않은 상황인데도 올해 증가율(13.5%)의 3배 수준(35%)으로 늘려 잡아놓았다.

◆"4분기 '어닝쇼크' 우산 준비해야"

애널리스트들은 보통 매년 11월부터 4분기 영업전망치를 조금씩 하향조정하기 시작해 4분기가 지난 후인 다음해 1월이 돼서야 '뒷북 하향 조정'에 나선다. NH투자증권분석에 따르면, 작년 11월 증권사들은 2008년 4분기 실적 전망치를 당초 전망치보다 7.7% 낮췄고, 올 1월이 돼서야 25%나 끌어내렸다.

NH투자증권 김형렬 연구위원은 "4분기 이익 전망치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 기업들의 이익 대비 주가가 싸졌다는 논리는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기업 이익 대비 주가비율)이 10배 수준으로 싸다는 논리가 많지만, 부풀려진 4분기 이익 추세를 볼 때 11배 중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2007~2008년 4분기 업종별 증권사 추정치와 실적발표치 간의 괴리도를 살펴보면, 건축자재·엔터테인먼트·금융지주회사·전기유틸리티·항공·통신장비·컴퓨터 등의 실적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