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에 힘없이 녹아버린 순수… 젊음…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하사탕》전(展)은 중남미에서 호평받은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국내 관람객에게도 보여주는 귀국전이다.

'한국 미술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된 《박하사탕》전은 2007년과 2008년 칠레 산티아고 현대미술관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미술관에서 순회전시를 가졌다. 그동안 중남미와 경제 교류는 있었지만 문화 교류는 적었기 때문에 《박하사탕》전을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자는 의도였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강승완 학예연구관은 "칠레 신문인 '라 세군다'로부터 '2007년 최고의 전시'로 선정될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 "중남미 다른 국가들도 인터넷을 통해 전시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하사탕》전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작가들이 시대적 상황에서 어떻게 작업해왔는가란 물음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따온 전시 제목은 처음엔 신선하고 상쾌하지만 곧 점령되고 전복될 수 있는 여린 가치, 젊음, 순수를 상징한다.

이번 국내 전시에서는 중남미 전시 때보다 작품을 더 보강해 국내 작가 23명의 작품 13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주제별로 ▲메이드 인 코리아 ▲뉴 타운 고스트 ▲플라스틱 천국으로 나뉜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이데올로기 시대에서 다원주의 시대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작가들의 시각을 보여준다. 서도호의 설치작품 〈유니폼〉은 중학교 같은 반 학생들의 교복을 통해 집단주의 속에 가려진 개인의 문제를 다뤘다. '뉴 타운 고스트'는 급속히 팽창하는 도시화 속에서 여성·소수자 등 소외받는 존재들을 다루고 있다. 공성훈의 회화 작품은 도시의 채워지지 못한 욕망이 분출하는 공간인 신도시를 그리고 있다. 멀리서 보면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섬뜩하고 비정한 어둠이 드러난다. '플라스틱 천국'은 소비문화가 폭발하는 시기에 문화의 생산과 분배·소비 등을 다루고 있다. 최정화의 설치작품은 동양의 몸에 서양의 얼굴을 한 '신장(神將)'을 등장시켜 문화의 변종과 혼종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하사탕》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40주년 기념전이기도 하다. 전시는 내년 2월 15일까지. 입장료 1500~3000원. (02)2188-6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