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과 쪽박사이] 영화 '2012'

이진호 기자 "오감이 반응하는, 블록버스터의 결정판" 대박지수 90％



3000억원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 역대 최고 수준의 CG, 재난영화의 베테랑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최신작. 이보다 더 화려한 스펙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스펙 때문에 오히려 '2012'에 거부감이 든 이들도 있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2012'와 같이 대대적인 홍보를 퍼부은 영화들은 개봉 뒤 쪽박차는 경우가 많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2012'는 기대 이상이었다. 미국 워싱턴D.C, 라스베이거스 등이 지진으로 파괴되고 대륙이 바다에 가라앉는 장면들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3D 영화를 보는 듯한 전율이랄까? 다소 빈약한 스토리가 영화의 약점이긴 하지만 스케일과 화려한 영상에 비해서 이는 그야말로 옥의 티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흥행 대박을 칠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세가지다. 첫 번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존 쿠삭은 아이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열연을, 우디 헤럴슨은 미치광이 괴짜 같은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다. 드류 베리모어와 다코타 페닝을 잇는 아역 여배우 모갠 릴리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마저도 압권이었다. 이들의 명연기는 지구 종말 앞에서 무너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과 생사의 기로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두 번째 이유는 설명이 필요없는, 차원이 다른 CG다. 과거 재난 영화의 CG가 아동용이었다면, '2012'은 성인용이라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이보다 더 실제 같을 수 있을까?', '실제보다 더 실제같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든다. 화려한 영상은 재난영화의 베테랑 감독다운 세심한 손길로 인해 더욱 웅장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철학을 아우르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2012'는 지구의 종말이라는 생사의 기로에 선 인간이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철학적 의문을 던진다. 서로 따뜻하게 안아주고 목소리를 듣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에서 인간이 그동안 얼마나 오만했는가 물음을 던진다. 특히 해일이 몰려오는 장면에서 티벳승이 종을 울리는 장면은 자연 앞에서 오만했던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 했다.

연기력, CG, 철학이라는 삼박자가 척척 맞아떨어진 대작 '2012'는 오랫동안 스케일이 큰 영화를 기다려왔던 관객들에게 단비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 zhenhao@sportschosun.com>

이인경 기자 "미국 버전 '해운대', 감동은 2％ 부족" 쪽박지수 50％



재난 영화 마니아라면 놓쳐서는 안될 롤랜드 에머리히표 종합선물세트다. 인류의 멸망과 새 출발을 모티프로 한 '2012'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광고 카피 문구, 딱 그대로다. 전율을 일으키는 CG의 결정판에 입이 쩍 벌어진다. 다만 올 여름 '해운대'가 휩쓸고 간 쓰나미급 인기 때문에, 겨울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미국 버전 해운대'가 또 한번 흥행몰이에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지진ㆍ폭설ㆍ쓰나미ㆍ화산 폭발 등 온갖 자연재해가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 내내 쏟아지는 바람에 눈은 쉴 틈이 없다. 또 재난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반드시 살아돌아온다'라는 법칙에 충실하다보니 온갖 우연의 일치가 등장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물론 재난영화의 미덕을 압도적인 CG에만 둔다면 100점에 가까운 수작이다. 다만 스토리까지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100억원짜리 '해운대'가 3000억원짜리 '2012'보다 낫다"라는 평을 할지도 모른다.

에머리히 감독은 전작보다 업그레이드된 휴머니즘을 곳곳에 입혔다. 현재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연상케하는 흑인 대통령 토마스 윌슨(대니 글로버)의 희생 정신, 처음으로 인류 대재앙의 조짐을 발견해낸 인도 과학자 가족의 숭고한 최후, 연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러시아 비행사의 사랑,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오는 가운데에서도 조용히 종을 울리는 티벳 불자의 철학 등이 현실감 있게 그려졌다.

미국식 영웅주의의 덫은 피했지만, 기독교식 세계관과 혈연밖에 믿을 건 없다는 가족주의를 내세운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하는 대형 선박을 만든다는 설정은 진부함을 안겼다. 일 때문에 가정을 나몰라라 한 소설가 잭슨 커티스(존 쿠삭)이 갑자기 전처와 두 아이를 살리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가운데, 누구보다 아이들을 아꼈던 전처의 애인은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는 스토리가 지나친 혈연주의 사고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나 CG의 지나친 리얼리티(?)가 영화 관람 후에도 뇌리에 계속 남아 오싹함을 안긴다. 땅이 쩍 갈라지고, 화산 불똥이 펑펑 치솟고, 쓰나미가 에베레스트 산을 삼키는 장관들을 보고 있자면, 너무 리얼해서인지 '실제로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악몽을 꿀 수도 있겠다. 노약자나 임산부 등 심신이 약한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