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컴백 손예진 "절벽서 손잡아준게 청룡영화상이었죠"

"절벽 끝에서 손을 잡아준 게 청룡영화상이에요." 지난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의 주인공 손예진이 돌아왔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감독 정윤수)에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팜므파탈 주인아 역으로 청룡 트로피를 거머쥔 손예진이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감독 박신우ㆍ이하 백야행)에선 차가운 매력의 섹시한 팜므파탈 미호 역으로 변신했다. 스페인의 뜨거운 햇볕 같았던 손예진이 선보일 얼음 여왕의 모습이 사뭇 기대된다.

신인때부터 '용꿈'꾸며 연기자 성장 전작 이어 또 다시 팜므파탈역 변신 베드신 화제? 실망할까 걱정인데…

　▶청룡영화상 추억.

지난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눈물을 보이던 손예진의 모습은 지금도 강한 잔상으로 남을 정도로 강렬했다. 당시 그녀는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라고 이 상을 주신 것 같다'는 눈물의 소감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새삼 당시의 심경이 궁금해 물었다. 손예진은 "신인 때부터 청룡 여우주연상은 꿈이었어요. 그 꿈을 꾸면서 연기자로 성장했죠"라며 "그때 좋으면서도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갑자기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과 주위 사람들 생각이 떠올라서 눈물이 나왔어요"라고 회상했다. "당시 우울하고 방황하던 시기였어요. 제가 맞다고 생각하고 걸어온 길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마치 청룡영화상이 절벽에서 따뜻하게 제 손을 잡아준 느낌이었어요. 연기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축복의 순간이었죠.

　▶팜므파탈이 나의 적역?

'무방비 도시' '아내가 결혼했다' '백야행'까지 손예진의 최근작 3편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팜므파탈이란 점이다.

손예진은 "'무방비 도시'는 외향적으로, '아내가 결혼했다'는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백야행'은 가장 악한 팜므파탈에 가까운 역"이라며 "의도적이진 않았어요. 그런데 팜므파탈을 떠나서 20대 후반 여배우가 하기엔 다 센 역할들이었죠"라고 털어놨다.

청순함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손예진인데 어느 순간부터 섹시함과 팜므파탈로 옷을 갈아입었다. 유독 그녀에게 이런 역할이 몰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는 "솔직히 제가 섹시해 보이진 않잖아요. 근데 감독님들이 절 보면 '웃고 있는데도 슬픔이 느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캐릭터의 복잡함과 다양성이 느껴지니 그런거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중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그녀가 섹시하지 않다'는 것엔 절대 동의할 수 없었지만, 깊은 눈에서 안개처럼 피어나는 슬픔은 느낄 수 있었다.

팜므파탈의 강한 캐릭터를 계속 소화했기 때문인지 손예진은 "다음 작품은 '작업의 정석' 같은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베드신과 배우로서의 자유

전작에 이어 '백야행'에서도 손예진의 베드신은 벌써부터 화제다. 예고편에서 짧게 한 장면이 공개됐음에도 팬들의 기대는 높아질대로 높아진 상태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노출 수위가 높지 않았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손예진의 베드신이 화제를 몰고다닌 것처럼.

손예진은 "베드신에 사람들이 너무 주목하니까, 언젠가는 '키스신도 찍지 말까'란 생각도 들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건 배우의 아픔, 깊은 연기인데 사람들이 '손예진 벗는다'란 시선으로 보면 속상하고 뭔가 짐을 짊어지는 느낌이에요"라고 토로했다. 그녀는 "마케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죠. 만약 그렇게 해서 관객이 더 많이 온다면 감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노출만 기대하고 왔다가 수위가 낮아서 실망할까봐 걱정이 돼요"라고 덧붙였다.

베드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배우로서의 자유로움을 빼앗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예진은 "예전엔 '나인하프위크'같은 매력적이고 섹시한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젠 고민이 더 많아졌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백야행

'백야행'은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 일본에선 지난 2006년 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어릴 때 살인을 저지른 후 사랑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계속 살인을 저지르는 미호(손예진)와 요한(고수), 이를 막기 위해 집요한 추적을 벌이는 형사 한동수(한석규) 3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미호는 '얼음 여왕'이라 불릴 만큼 모든 것에 대해 차가운 게 매력인 캐릭터다. 말, 행동, 감정 중 어느 것 하나 따뜻함을 밖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다.

손예진은 "전작들에서 이혼녀, 불륜녀 등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이번 미호 캐릭터는 어려웠어요. 미호의 아픔을 제가 직간접적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라며 "그래서 거짓말 연기를 할까 부담도 컸어요. 정답을 알 수 없는 그런 캐릭터죠"라고 말했다.

'백야(하얀 어둠)' 처럼 모순된 매력을 지닌 손예진. 따뜻한 햇볕과 차가운 바람을 모두 지닌 손예진이 찾은 미호의 정답이 뭔지 궁금하다. 백야행은 19일 개봉한다.

< 박종권 기자 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