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한국에 온 레오 카락스 감독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 피',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만든 프랑스의 레오 카락스(49) 감독이 '넥스트플러스영화축제' 초청으로 내한했다. 그의 방한은 '폴라 X' 개봉(1999년) 당시 이후 10년 만이다. 그는 24세에 데뷔한 이래 지금껏 장편영화를 4편 내놓은 과작(寡作) 감독이다. 5일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말수가 적고 음성도 낮았다.

"영화를 만드는 능력이란 사랑에 빠지는 능력과 비슷한 겁니다. 시간이 있다고 사랑할 수는 없죠. 영화는 결국 사람들과의 만남인데 함께 일하고픈 배우와 스태프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으면 여행이나 글쓰기를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겠지만, 영화는 못 만들죠." 작품이 많지 않은 데 대한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작년 말 봉준호, 미셸 공드리 감독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도쿄!'를 내놓았었다.

그의 본명은 알렉스 뒤퐁(Alex Dupont). 13살 때 스스로 이름을 바꿨다. "반항심이 크던 사춘기 때 그 이전까지의 모든 나 자신으로부터 떠나고 싶었어요. 마침 오스카 와일드를 읽고 있어서 Alex와 Oscar의 철자를 섞어서 만든 이름이죠."

카락스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다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제 영화가 다시 관객들을 만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그렇지만 만든 영화보다는 앞으로 만들 영화에 관심을 온통 쏟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보지 않는 이유가 있다기보다, 다시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런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관객과 만날 예정이고, 예전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것이다. "정말 진지한 질문과 대답은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났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관객들이 왜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남의 영화도 거의 보지 않는다는 그는 "한국영화 중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흥미롭게 봤다"고 했다. "저는 남의 영화를 보기보다 주변의 삶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모든 예술가는 언젠가 자신만의 고전주의를 완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예술가의 마지막 질문은 '내 작품을 위해 무엇을 바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폴라 X' 때 혹평을 받았던 그는 "누구나 다 영화 얘기를 하는 요즘 평론가는 더 이상 존재하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예전에도 한 세대에 한두명 정도밖에 없던 직업"이라고 말했다. 새 작품 계획에 대해 그는 "'나쁜 피'에 답하는 형식의 영화 '흉터'와, 두 남녀의 얼굴에 대한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