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문명의 중심지. 과테말레의 고대 도시 티칼에서 집단 자살 사태가 발생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한 할인마트는 갑작스런 지진으로 반토막난다. 카트를 밀며 쇼핑 중이던 시민들이 갈라진 균열 속으로 떨어질 뻔 하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된다.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있던 거대한 호수는 수증기로 증발해버렸다. 태양에서 분출된 중성미자가 지구의 물분자를 뜨겁게 데우면서 지구 내부를 폭발 직전의 압력밥솥으로 만든 것이다. 지질학자 에이드리안 햄슬리(치웨텔 에지오프)는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대규모 재난(혹은 인류 멸망)이 오고 있음을 간파한다. 멸망의 시간을 예측해냈지만, 불청객은 생각보다 조금 일찍 찾아온다.
생방송 연설을 통해 '대지진 따위는 없다'며 시민들을 안심시키려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닮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세트장이 무너지며 그 자리에서 즉사. 옐로우스톤의 장대한 자연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산과 대지가 불룩 불룩 솟아오른다. 화산폭발이다.
남미에선 진도 8.5의 강진이 발생해 200만명이 사망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은 전격 취소된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흔들리더니 아담과 하나님의 손가락 사이로 균열이 생기면서 무너진다. 바티칸 광장에 모여있던 이탈리아 총리와 수만명의 가톨릭 신도들은 공포와 절규 속에 주의 부름을 받는다. 지진 뒤엔 거대 쓰나미다. JFK 항공모함이 거대한 파도 위를 서핑하며 백악관을 덮친다. 위스콘신주는 지구의 자장이 바뀌면서 새로운 남극이 된다.
쓰나미는 구름 위도 범한다. 해발 8000m급 히말라야 14좌를 바라보며 정좌하고 있던 노승은 자신에게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종을 울린다. 지금까지 말로 묘사한 모든 것이 눈 앞에서 실제로 벌어진다고 상상해 보라. 영화 '2012'는 재난의 규모와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적 측면에서 상상가능한 모든 것, 혹은 그 이상을 보여준다.
시각적 쾌감에 비해 이야기 진행은 진부하다. 재난 속을 뚫고 나가는 두 가족은 이혼과 재회, 화해와 희생 같은 안구에 습기찰 만한 내용을 두루두루 건드리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노아의 방주에 올라탈 땐 '한국, 버림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열혈 애국자의 눈엔 거슬릴지 모른다. 미국도, 중국도, 혹은 ('왕따' 당한) 한국 정부도 2012년 인류 멸망은 막지 못했다.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건 자기 자신 뿐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영화는 12일 개봉이다.
< 권영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