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 선배와 카리스마 대결에 흥분됐다."
그렇게 부드럽던 사람이 이렇게 공포스럽게 변할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못 했다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형집행제도와 교도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집행자'(감독 최진호)에서 연쇄살인범 용두 역을 맡은 조성하.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눈빛과 포효에 여성 관객들은 눈을 질끈 감았고, 남성 관객들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진짜 연쇄살인범 보다 더 살인범 같은 연기를 선보인 조성하를 보면서 공포감 때문인지 그의 전작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하사극 '대왕 세종'(KBS2)에서 세종의 자상한 스승인 이수가 바로 그였다. 청아한 선비로서 세종을 가르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너무 캐릭터가 달라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거의 없어요. 그게 제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는 아는데 저를 모르는 게 배우로선 신비감이 살아있어 장점이 되지만, 인지도가 좀 낮은 게 단점이지요. 그런데 전 그게 자랑스럽습니다."
사실 '집행자'에서 조성하의 분량이 많은 것은 아니다. 사형집행의 부활에 단초를 제공하기 위한 살인마 캐릭터라 특별히 살인 장면이 나오거나 하진 않는다. 교도소에 들어오면서부터 폭력적인 교도관 종호 역의 조재현과 잠깐 마찰을 일으키는 에피소드에만 등장한다. 이 순간 조성하는 마치 한국의 대표 카리스마 연기자와 '맞짱'을 붙는 듯한 강한 연기를 선보였다.
"촬영 전부터 조재현 선배와 맞붙어야 한다는 점에 기대가 컸습니다. 역시 대한민국 대표 카리스마 배우였어요. 에너지가 넘쳐서 서로 연기를 주고받으니까 생동감이 증폭되는 느낌에 흥분됐으니까요."
조재현과의 대결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신이다. 살인 장면 없이 단지 인물의 대결만으로 살인마의 악마성을 단박에 보여주는 조성하의 연기력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또 조성하의 악마 같은 연기를 바탕으로 영화의 주제인 사형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조성하는 주연은 아니지만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의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조성하의 다음 상대는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인 김윤석 하정우다. '추격자'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 '황해'에서 김윤석 하정우와 함께 주연을 맡아 연기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김윤석씨는 평소에도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저와 또래인데 어렵게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배우라, 제게 '동기부여'를 해줍니다. 더 열심히 더 좋은 작품에 참여하도록 응원하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황해'를 통해 세상에 조성하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낮은 인지도의 단점이 사라지고 연기력이란 장점만 남는 배우 조성하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