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2'로 본 종말론 재난 블록버스터

　▶자연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 공포의 역사는 깊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중국 신화에서 최고 신은 모두 '번개의 신'이다. 현대인도 다를 바 없다. TV로 인도네시아 쓰나미, 중국 쓰촨성 지진 등의 참사를 지켜보면서 자연에 대한 공포심이 강화된다. 인간의 숨겨진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인간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딥 임팩트'나 '단테스 피크'가 대표적이다.

이런 천재지변은 최첨단 현대과학으로도 막을 수 없다. 운명적이다. 할리우드는 이런 불안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인류의 위기마저도 돈으로 바꾸는 게 할리우드다.

　▶평범한 영웅, 지구를 구하다

그러나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나타난다. 이때 주인공은 평범한 인물이다.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과학자나 소시민이 문제를 해결한다. 가족애도 핵심 요소다. 인류를 구한 주인공이 최후의 순간에 가족과 이별하는 장면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브루스 윌리스가 굴착기사로 출연했던 '아마겟돈'의 엔딩이 그렇다.

　▶인류에 대한 경고

종말론 재난영화는 인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의 최후를 보여준다.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의 절반이 빙하기로 되돌아가는 재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SF영화 '혹성탈출'에서는 인류가 원숭이들의 지배하에서 노예처럼 산다. 인류의 지적 오만이 원인이었다.

재난영화에서는 과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재앙을 예고하고, 동시에 해결사로 활약한다. 기후학자('투모로우'), 지구물리학자('더 코어'), 천체물리학자('노잉') 등이다. 종말론이 나오지는 않지만, '해운대'에서도 지질학자가 쓰나미를 경고했다.

　▶기술의 발달이 일등공신(?)

재난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과도 관련이 있다. 재난영화에서는 건물이 붕괴되고, 자동차가 휴지조각처럼 공중으로 날아가고, 시뻘건 용암이 뿜어져 나오고, 거대한 홍수나 쓰나미가 몰려온다. 스펙터클한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이런 재난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동감을 얻는다. 제작사도 재난 장면에 승부를 건다. '해운대'는 쓰나미 장면을 위해 5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2012'는 재난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종교적 상징의 빈번한 사용

종말론 재난영화에는 신화적, 종교적 요소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성경이 자주 원용된다. '노잉'에서 아이들이 우주선에 타는 장면은 '노아의 방주'를, 그 아이가 나무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에덴의 동산'을 연상시킨다. '2012'에는 노아의 방주 장면이 더 노골적으로 나온다.

종말론은 서양문화의 뿌리인 성경의 핵심 교리 중 하나다. 할리우드가 이 종말론을 이용하는 것이다. 재난영화에 불의 심판, 행성 충돌 등이 애용되는 문화적 배경이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영화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미국인이다. 재난에 의해 위험에 처하는 곳도 뉴욕, LA 인근 혹은 대서양이다. 해결사도, 구세주도 미국인이다. 이 영화들이 전세계에서 상영되면서, '미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문화제국주의다. '더 코어'나 '아마겟돈'처럼 핵무기가 지구를 구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NASA "종말은 없다" 제동

'2012년 지구 멸망설'이 급속도로 퍼지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2년 멸망설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낭설"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인간의 불안감을 이용하려는 상술과 인터넷의 복제 기능이 만나 멸망설을 키우고 있을 뿐"이라고 정리했다. 또 "앞으로 수십년 동안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정렬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다시 종말론 재난영화가 화제다. 30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2'가 진원지다. '2012년 12월 21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종말론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12'는 개봉 첫주 160만 관객을 돌파하며 11월 극장가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다. '2012'에서 제기한 종말설의 근거는 고대 마야인의 달력이 이 날짜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날 은하계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배열되면서 지진, 화산, 해일 등 엄청난 재앙이 닥쳐 지구가 멸망한다는 게 요지다. 종말론이 등장하는 재난영화 혹은 재난을 배경으로 하는 종말론 영화는 20세기 말에 가장 유행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인디펜던스 데이'(96), '딥 임팩트'(98), '아마겟돈'(98) 등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21세기에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노잉'이 인기를 끌었다. 종말론 영화와 재난영화는 일맥상통한다. 지구의 종말만큼 끔찍한 재난은 없기 때문이다. 재난의 종류는 지진, 해일, 화산, 홍수 등 거대한 자연 재해가 대부분이다. 지구 종말은 SF영화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외계인이나 행성과의 충돌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뻔한 '영웅 띄우기' 그러나… 질리지 않는 '할리우드 뷔페'

종교적 상상 + CG + 미국식 사고 '단골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