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2012'
입력 : 2009.11.17 16:03
| '재난 종합세트' 감동은 다 어디갔지? |
독일 출신 롤랜도 에머리히는 손꼽히는 재난영화 전문 감독이다. 할리우드 재난영화 리스트를 작성할 때 빠지지 않는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등을 연출했다. '2012'는 그동안의 재난영화 연출 경험이 집약된 영화다. 규모나 스케일이 전작들을 능가한다. 그만큼 '2012'에는 모든 것이 흘러넘친다.
'2012'는 재난영화의 종합선물세트 같다. 재난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쓸어담았다. 재난영화에 자연 재해가 위험요소로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대개는 한 영화에 한두 가지 종류가 나온다. '2012'는 스케일이 다르다. 지진, 화산 폭발, 해일, 행성(태양)이 모두 나온다. 여기에 종말론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 종말론도 복합적이다. 고대 마야인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는 것에다 주역과 노스트라다무스까지 끌어들인다. 전형적인 '종말론+재난영화'의 수준을 넘어선다.
볼거리로만 따지면, '2012'는 스크린을 꽉 채우고도 남는다. 특히 LA가 지진과 해일로 초토화되는 초반 장면은 압도적이다. 슈퍼마켓과 도로가 절반으로 갈라지고, 스카이라인이 맥없이 무너지는 화면의 긴장감도 매우 뛰어나다. 옐로우스톤 화산 폭발, 에베레스트 해일의 스펙터클 역시 모자람이 없다. '해운대'의 쓰나미 CG(컴퓨터 그래픽)는 차라리 소꿉장난으로 느껴진다. '2012'는 재난영화의 매뉴얼로도 손색없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관습 그대로다. 태양 흑점의 폭발로 지구 내부가 끓어오르면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지질학자 햄슬리(치웨델 에지오프)는 그 위험성을 정부에 알린다. 지진, 화산 폭발, 해일이 지구촌을 강타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은 3년 전부터 극비 피난처를 준비해 왔다. 이혼한 소설가 잭슨(존 쿠삭)은 천재지변 속에서, 온갖 난관을 뚫고 가족을 구출해 낸다. 우여곡절 끝에 '선택받은 자' 대열에 합류한다.
영화의 얼개는 전형적이다. 인간(과학)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재앙, 미국 정부의 개입, 도시와 국가의 파괴가 이어진다. 캐릭터도 익숙하다. 불화하던 가족은 자연 재해를 극복하며 화해하고, 젊은 과학자는 '행동하는 양심'을 대표하고, 위기의 순간에 자기 안위만 걱정하는 인물도 빠짐없이 나온다. 인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 희망을 발견한다는 결말도 마치 벽돌을 찍어낸 듯 똑같다.
새로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재난의 종류가 다양하고 스케일이 큰 데다, 인파이터 복서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그러나 산해진미도 끼니마다 먹으면 귀한 줄 모르는 법이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스펙터클의 신선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유다. 흑인 대통령-과학자 콤비도 흥미롭다. 재난영화에서 흑인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2012'처럼 흑인이 대통령, 과학자로 동시에 등장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이례적이다.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시대 흐름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처럼 없는 게 없고,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데도 영화는 왠지 허전하다. 장르영화의 '뻔함'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상투성, 캐릭터의 단순함은 새쌈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무엇보다 종말론의 근거가 허약하기 짝이 없다. 마야인의 종말론에 대한 세심하고 전문적인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대사 한 마디로 어물쩍 넘어간다. 감독도 그 허점을 의식했을까. 고대 예언가와 동양 사상까지 끌어들인다. 그래서 더 어정쩡한 비빔밥이 돼 버렸다.
주춧돌이 모래성처럼 불안하니, 이야기의 줄기가 다채롭게 뻗어나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영화는 그 빈틈을 화려한 볼거리로 메운다. 그래서 스펙터클한 재난 장면을 줄기차게 들이민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전문감독의 명성 그대로다. '2012'는 CG의 향연만 기대한다면 전혀 불만이 없다. 그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람냄새 나는 재난영화'를 표방한 '해운대'가 생각나는 이유다.
< 기획취재팀>
'2012'는 재난영화의 종합선물세트 같다. 재난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쓸어담았다. 재난영화에 자연 재해가 위험요소로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대개는 한 영화에 한두 가지 종류가 나온다. '2012'는 스케일이 다르다. 지진, 화산 폭발, 해일, 행성(태양)이 모두 나온다. 여기에 종말론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 종말론도 복합적이다. 고대 마야인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는 것에다 주역과 노스트라다무스까지 끌어들인다. 전형적인 '종말론+재난영화'의 수준을 넘어선다.
볼거리로만 따지면, '2012'는 스크린을 꽉 채우고도 남는다. 특히 LA가 지진과 해일로 초토화되는 초반 장면은 압도적이다. 슈퍼마켓과 도로가 절반으로 갈라지고, 스카이라인이 맥없이 무너지는 화면의 긴장감도 매우 뛰어나다. 옐로우스톤 화산 폭발, 에베레스트 해일의 스펙터클 역시 모자람이 없다. '해운대'의 쓰나미 CG(컴퓨터 그래픽)는 차라리 소꿉장난으로 느껴진다. '2012'는 재난영화의 매뉴얼로도 손색없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관습 그대로다. 태양 흑점의 폭발로 지구 내부가 끓어오르면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지질학자 햄슬리(치웨델 에지오프)는 그 위험성을 정부에 알린다. 지진, 화산 폭발, 해일이 지구촌을 강타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은 3년 전부터 극비 피난처를 준비해 왔다. 이혼한 소설가 잭슨(존 쿠삭)은 천재지변 속에서, 온갖 난관을 뚫고 가족을 구출해 낸다. 우여곡절 끝에 '선택받은 자' 대열에 합류한다.
영화의 얼개는 전형적이다. 인간(과학)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재앙, 미국 정부의 개입, 도시와 국가의 파괴가 이어진다. 캐릭터도 익숙하다. 불화하던 가족은 자연 재해를 극복하며 화해하고, 젊은 과학자는 '행동하는 양심'을 대표하고, 위기의 순간에 자기 안위만 걱정하는 인물도 빠짐없이 나온다. 인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 희망을 발견한다는 결말도 마치 벽돌을 찍어낸 듯 똑같다.
새로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재난의 종류가 다양하고 스케일이 큰 데다, 인파이터 복서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그러나 산해진미도 끼니마다 먹으면 귀한 줄 모르는 법이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스펙터클의 신선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유다. 흑인 대통령-과학자 콤비도 흥미롭다. 재난영화에서 흑인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2012'처럼 흑인이 대통령, 과학자로 동시에 등장해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이례적이다.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시대 흐름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처럼 없는 게 없고,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데도 영화는 왠지 허전하다. 장르영화의 '뻔함'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상투성, 캐릭터의 단순함은 새쌈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무엇보다 종말론의 근거가 허약하기 짝이 없다. 마야인의 종말론에 대한 세심하고 전문적인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대사 한 마디로 어물쩍 넘어간다. 감독도 그 허점을 의식했을까. 고대 예언가와 동양 사상까지 끌어들인다. 그래서 더 어정쩡한 비빔밥이 돼 버렸다.
주춧돌이 모래성처럼 불안하니, 이야기의 줄기가 다채롭게 뻗어나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영화는 그 빈틈을 화려한 볼거리로 메운다. 그래서 스펙터클한 재난 장면을 줄기차게 들이민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전문감독의 명성 그대로다. '2012'는 CG의 향연만 기대한다면 전혀 불만이 없다. 그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람냄새 나는 재난영화'를 표방한 '해운대'가 생각나는 이유다.
<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