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람-wish', '똥파리' 이은 저예산 웰메이드 돌풍 예고

[스포츠조선 T―뉴스 이진호 기자] 부산 실업계 고등학교의 불법서클을 배경으로 사나이들의 영화? 뻔한 고딩들의 우정, 식상한 부산 사투리, 소위 '일진' '짱'이라 불리는 고딩들의 혈투.... 영화 '바람: Wish'을 보기 전 떠오른 솔직한 선입견이었다. '친구'(2001년)를 연상케하는 포스터와 비슷한 카피 문구도 실망감을 던졌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연 '바람'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수작이었다.

'바람'은 '폼나고만 싶었던 학창시절, 다시 돌아간다면?'이란 카피 문구처럼, 부풀려지고 미화되는 군대 후일담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엔 지금도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후회와 아쉬움들이 담겨 있다. 사고를 친 후 부모님과 마주했을 때의 어색한 미안함, 행여 맞을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여자친구 앞에선 센 척 하는 남자들의 본능까지.... 그 안엔 현실이 있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스토리와 철학에 비해 '바람'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철없는 짱구(정우)가 상업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질풍노도 성장기를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폼나게 한번 살아보고픈 짱구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는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뿌린다. 철없던 짱구는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소년에서 어른으로 훌쩍 성장하게 된다.

단순히 재밌는 상황과 대사의 나열로 싱겁게 웃고 마는 가벼운 영화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건드리면서 진한 공감을 준다. 가장인 아버지를 잃고 가슴을 억누르며 참다가 끝내 오열하는 정우의 연기는 여기저기의 객석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똥파리'는 올 상반기 웰메이드 저예산 영화의 힘을 보여줬다. 그 저력을 하반기 '바람'이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한 감독은 저예산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와 주연인 정우의 탁월한 연기력을 잘 버무렸다. 자칫 가벼워 질 수 있는 영화를 담담하게 물 흐르듯이 그려나갔다. 다소 남성 중심의 느낌을 풍기기도 하지만, 여성 관객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만한 청춘의 단상이 '바람'엔 담겨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람'은 심의 등급상 18세 이상 관람가이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독한 요즘 세상에서, '바람'이 전하고픈 메시지를 간과한 심의 제도가 못내 아쉽기만 하다.

< zhenha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