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영화 '2012'로 본 종말론 재난 블록버스터

다시 종말론 재난영화가 화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2'가 진원지다. '2012년 12월 21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종말론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12'는 지난 주말 70％가 넘는 압도적인 예매율로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에서 제기한 2012년 종말설의 근거는 고대 마야인의 달력이다. 천문학이 고도로 발달돼 있던 마야인들의 달력이 이 날짜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날 은하계 행성들은 일직선으로 배열되는데, 그 결과 지진, 화산, 해일 등 엄청난 재앙이 닥쳐 지구가 멸망한다는 게 요지다. 지구 종말이 등장하는 영화로는 올해만 해도 '노잉'이 개봉돼 인기를 끌었다. 종말론이 등장하는 재난영화 혹은 재난을 배경으로 하는 종말론 영화는 20세기 말에 가장 유행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인디펜던스 데이'(96), '딥 임팩트'(98), '아마겟돈'(98) 등이 쏟아져 나왔다. 관객들의 막연한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종말론 영화와 재난영화는 일맥상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구의 종말만큼 끔찍한 재난은 없기 때문이다. 재난의 종류는 지진, 해일, 화산, 홍수 등 거대한 자연 재해가 대부분이다. 지구 종말은 SF영화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외계인이나 행성과의 충돌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할리우드의 빤한 '영웅 띄우기'…

 

종교적 상상 + CG 힘 등 어우러진 '단골 인기메뉴' '2012년 지구 멸망설' … NASA 이례적 반박 발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

인간은 자연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 공포의 역사는 깊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중국 신화에서 최고 신은 '번개의 신'인 제우스와 황제다. 현대인도 다를 바 없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중국 쓰촨성 지진 등의 참사를 TV로 지켜보면서 자연에 대한 공포심이 강화된다. 이런 천재지변은 현대과학으로도 어쩔 수 없다. 할리우드는 이런 불안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종말론이 등장하는 재난 영화에는 어김없이 극한 상황이 등장한다. 인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봉착한다. 이때 인간의 숨겨진 본성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100만명만 수용할 수 있는 극비 지하 요새로 가는 길은 아수라장이 되고('딥 임팩트'), 화산 폭발로 잿더미가 될 상황에서도 개인의 치부만 따지는 인물('단테스 피크')이 있다.

▶평범한 영웅, 지구를 구하다

그러나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지구를 구하는 주인공은 거의 평범한 영웅이다.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젊은 과학자나 소시민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들은 슈퍼맨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가족애도 핵심 요소로 등장한다. 인류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하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가족과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브루스 윌리스가 석유 굴착기사로 출연했던 '아마겟돈'의 엔딩이 그렇다.

▶인류에 대한 경고

종말론 재난영화는 화려한 볼거리 속에 인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의 최후를 보여준다.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상황이 등장한다. 영화는 온난화로 인해 지구 절반이 빙하기로 되돌아가는 재앙을 경고한다. 재난영화에서는 과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재앙을 예고하고 동시에 해결사로도 활약한다. '투모로우'에서는 기후학자, '더 코어'에서는 지구물리학자, '노잉'에서는 천체물리학자가 핵심 인물이다. 종말론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해운대'에서도 지질학자가 재난을 경고했다.

종말론은 SF영화에서 더 빈번하게 등장한다. '혹성탈출'은 인류가 원숭이들의 지배하에서 노예처럼 산다. 인류의 지적 오만이 원인이다.

▶기술의 발달이 일등공신(?)

지구 종말을 다룬 재난영화, SF영화의 발달은 좀 엉뚱한 방향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이다. 재난영화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붕괴되고, 거리의 자동차가 휴지조각처럼 공중으로 날아가고, 화산 폭발로 시뻘건 용암이 뿜어져 나오고, 거대한 홍수나 해일이 밀려온다. 이런 스펙터클한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생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런 재난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생동감을 얻는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실감나는 쓰나미 장면이 대박의 일등공신이 됐다. '투모로우', '퍼펙트 스톰' CG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았고, 무려 5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3000억원이 투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2'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나 '타워링' 같은 70년대 재난영화에도 실감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영화처럼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됐다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종교적 상징의 빈번한 사용

종말론 재난영화에는 신화적, 종교적 요소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종교와 과학이 함께 작용한다. 특히 성경이 자주 원용된다. '노잉'에서 아이들이 우주선에 타는 장면은 '노아의 방주'를, 그 아이가 나무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에덴의 동산'을 연상시킨다. '2012'에도 노아의 방주 장면이 나온다.

종말론 재난영화의 본거지는 할리우드다. 그런데 종말론은 서양문화의 뿌리인 성경의 핵심 교리 중 하나다. 할리우드가 이 성경의 종말론을 이용하는 것이다. 불, 행성 충돌 등이 애용되는 문화적 배경이다. 서양의 시간관은 직선적이다. 종말이 예고돼 있다. 반면 동양의 시간관은 순환적이다. 종말이 없다. 할리우드와 동양권 영화의 차이점이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미국인이다. 재난에 의해 위험에 처하는 곳도 뉴욕이나 LA 인근 혹은 대서양이다. 해결사도 당연히 미국인이다. 이 영화들이 전세계에서 상영되면서, '미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무서운 문화제국주의다. 할리우드가 돈을 투자해 제작하므로 당연할 수도 있지만,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코어'나 '아마겟돈'처럼 핵무기가 지구를 구하는 결정적인 무기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NASA "종말은 없다"

영화 '2012'로 인해 '2012년 지구 멸망설'이 퍼지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9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2년 멸망설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낭설"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인간의 불안감을 이용하려는 상술과 인터넷의 복제 기능이 만나 멸망설을 키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앞으로 수십년 동안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정렬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ASA는 지자기폭풍과 남북극 역전, 지각판 불안, 대규모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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