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의 시네마 업데이트] '에반게리온 - 파'

20세기 말의 전설적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팬들은 무척 기다렸을 소식이다. 2006년 총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21세기 버전의 신극장판 제작을 발표한 후 2007년의 첫 번째 극장판 '에반게리온 : 서'에 이어, 두 번째 극장판 '에반게리온 : 파'가 국내 개봉 직전이다. 1편 '에반게리온 : 서'를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다면 '에반게리온 : 파'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트랜스포머'의 실사화된 로봇들이 막대한 제작비를 써 가며 수다나 떨고 있는 사이에, 실사화 따윈 필요 없을 만큼 진화해버린 '에반게리온 : 파'의 완성도는 최강에 이르렀다.

'세컨드 임팩트'라는 재앙으로 인류의 절반이 사라진 지구에서 '사도'라는 정체불명의 적들이 나머지 인류를 공격한다. 사도를 물리치기 위해 창설된 특무기관 네르프가 만들어낸 것이 파일럿과 한 몸이 돼 싸우는 인간형 전투 병기 에반게리온, 속칭 '에바'다. 에바의 파일럿은 십대들이다. 왜 자신이 에바를 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소년 이카리 신지, 묵묵히 명령을 따르는 소녀 아야나미 레이, 그리고 에바를 타는 것만이 인정받는 길이라 여기는 또 다른 소녀 아스카 랑그레이. 그중 아스카가 사도의 공격에 희생되고, 신지는 견딜 수 없는 선택에 내몰린다.

'신개념 극장판'이란 말이 실감날 만큼 '에반게리온 : 파'는 모든 게 치열하다. 단 한 컷을 보여줘도 그 에너지에 압도될 지경이다. 이야기의 전개 스피드도 빠르다. '에반게리온 : 서'가 TV 시리즈의 1편에서 6편까지를 축약했다면 2편 '에반게리온 : 파'는 전편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도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시리즈 자체가 완벽한 세계관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원작 시리즈가 에바 파일럿으로 대표되는 십대들의 혼란과 세기말의 혼돈을 그렸다면 극장판은 소통불가능한 세대와의 소통,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낸다.

물론 의아한 구석도 많다. 에바 5호기와 파일럿 마키나미 마리라는 새 캐릭터, 원작에선 열 번째 사도로 등장했던 캐릭터 카오루의 출현은 에반게리온 팬들에게도 의문투성이 설정들이다. 그 의문의 조각들을 모두 뭉쳐내는 건 에반게리온이 질주하며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쾌감과 그 전율적 액션의 순간에 친구를 구하려 손을 뻗는 주인공들의 연대감이다. 특히 신지와 레이, 아스카가 탄 세 대의 에반게리온과 일곱 번째 사도의 전투 장면, 신지가 탄 에반게리온 초호기가 도심 위를 달리는 장면은 소름이 끼친다. 온갖 비밀을 간직한 이야기가 3편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예측 불가능하지만, 아마 그 어떤 예상도 모두 뛰어넘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