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들의 진한 묵향(墨香)이 퍼지고…

옛 선비들에게 벼루는 단순한 필기도구 이상이었다. 시상(詩想)의 보고였고, 이상(理想)을 담는 도구였으며, 각종 문양을 장식해 공간에 품격을 더하는 예술품이기도 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정영호)에서 12월 25일까지 열리는 《벼루 600선(選)》 특별전은 옛 선비들의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자리다. 박물관이 소장한 1000여점의 벼루 중에서 엄선한 600점을 재질·형태·문양·국가별로 나누어 선보인다. 돌·옥·도자기·토기·나무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든 벼루, 용·매화·포도 같은 화려한 문양을 넣은 벼루, 일지연(一池硯)·심지연(心池硯) 등 여러 형태의 연지(硯池·먹물이 고이도록 오목하게 팬 곳)를 가진 벼루 등 각양각색의 벼루가 즐비하다.

묵향(墨香) 가득한 전시장에서 유독 시선을 잡는 것은 7세기 무렵의 신라 벼루다. 1970년대 초 단국대 박물관이 경북 경주 인왕동에서 수습한 도제연(陶製硯·진흙을 구워 유약을 바른 벼루)으로, 둥근 몸통에 4개의 다리가 달렸다. 윗면 가장자리에 둥글게 물홈이 파여 있고, 중앙에는 먹갈이 부분까지 갖춘 전형적인 삼국시대 벼루 형식이다.

벼루 하나 하나마다 장인의 숨결이 배어 있다. 추사 김정희, 우봉 조희룡, 다산 정약용 등 조선시대 명사들이 소장하던 벼루들도 나란히 함께 놓였다. 추사의 벼루 뒷면에 새겨진 '一莊修竹半牀書(일장수죽반상서·집안에는 대나무가 가득하고 책상 위에는 책이 반이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