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속의 '팜므 파탈'

'타짜' 김혜수 아찔한 뒷모습 전신누드 화제

'인사동…' 엄정화 유혹-사업수완 탁월… '해피엔드' 전도연 충격적 불륜-베드신 인상적

한국영화에서 팜므 파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50년대 중반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자유부인'(1956)이 원조라 할 수 있을 만큼 뿌리가 깊다. 주로 남성 관객들의 성적 판타지를 겨냥하고 있다.

올해 최고의 팜므 파탈로는 엄정화를 꼽을 수 있다. 엄정화는 '인사동 스캔들'에서 미술계 큰손 배태진으로 출연, 뇌쇄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배태진은 빼어난 외모와 수완으로 원하는 그림은 기어이 손에 넣는 욕망의 화신이다. 복원 전문가 이강준(김래원)을 스카우트해 400억원짜리 벽안도를 복원하는 사업을 총지휘한다. 이때 사기, 배신, 살인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녀는 전형적인 팜므 파탈 캐릭터다. 남자를 유혹하는데 능수능란하고, 사업 수완도 대단하다. 그래서 붉은 립스틱, 여우꼬리처럼 치켜올라간 아이라인, 뱅 스타일의 머리모양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야한 의상까지 곁들여 남성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서형도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비슷한 이미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김민정은 '작전'에서 지적인 자산관리사로 출연, 도도한 팜므파탈을 선보였다.

월드스타 전도연도 팜므 파탈로 등장한 적이 있다. '해피엔드'(1999)의 커리어우먼 최보라였다. 그녀는 실직한 남편을 두고 대학시절 애인이었던 김일범(주진모)과 만나 뜨거운 사랑을 불태웠다. 전도연은 당시 청순하고 순박한 이미지로 어필했는데, '해피엔드'에서 유부녀의 불륜과 파멸 과정을 적나라한 베드신과 함께 선보여 팬들을 놀라게 했다.

90년대에는 또 강수연 진희경 김여진('처녀들의 저녁식사'), 문소리('바람난 가족') 등이 팜므 파탈 혹은 자신의 성적 욕망에 솔직한 여성상을 선보였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 팜므 파탈의 대명사는 역시 김혜수다. 스크린 밖에서도 섹시스타로 군림한 김혜수는 '얼굴 없는 미녀'(2004)와 '타짜'(2006)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섹시한 여성의 진수를 보여줬다. 김혜수는 '얼굴 없는 미녀'에서 지적이고 매혹적이지만 경계선 장애로 정신과를 드나드는 여성으로 출연했다. 얼굴을 뒤덮는 헝클어진 머리, 피처럼 붉은 립스틱과 진한 화장으로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타짜'에서는 여성들의 마음까지 뒤흔들었다. '도박판의 꽃' 정 마담으로 출연, 화투의 타짜인 고니(조승우)와 사랑에 빠진 후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특히 뒷모습 전신 누드로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다. 당시 '김혜수 따라하기' 성형 열풍이 불었을 정도였다. 손예진이 '백야행'에서 뒷모습 누드를 선보인 것도 팜므 파탈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려는 전략이다.

한국영화 첫 팜므 파탈로는 최은희를 꼽을 수 있다. 당대 최고 스타였던 최은희는 '지옥화'(1960)에서 탐욕스러운 기지촌 양공주로 변신, 서구적 팜므파탈의 모습을 선보였다.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검은 드레스와 선글라스, 서구적인 메이크업, 담배를 피워무는 모습으로 나와 충격을 줬다.

거장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도 빼놓을 수 없다. '하녀'의 식모(이은심)는 여성적 매력을 앞세워 가장인 동식(김진규)과 불륜 관계를 맺고, 그의 아내와 기묘한 동거를 한다. 그로테스크한 성격의 식모는 임신과 낙태를 겪으며 복수의 화신이 되고, 끝내 동식과 그 집안을 파국으로 몰고간다. '하녀'는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임상수 감독, 전도연 주연으로 2010년 리메이크될 예정이다.

1970, 80년대에는 여성들의 성적 매력을 클로즈업한 에로영화가 붐을 이뤘다. 그러나 이 에로영화들은 여성의 성을 단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차원에 머물고 말았다.

< 임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