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카데미'에서 한국 영화의 내일을 본다
입력 : 2009.12.01 03:04
제작연구과정 2기 작품 4편 잇따라 개봉
대부분 무명배우에 1억 미만 초저예산 영화… 그래도 작품성은 "최고"
문제: 다음의 세 가지 힌트를 읽고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시오. ①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감독의 데뷔작 ②역시 거의 무명인 출연배우들 ③제작비 1억원 미만의 초저예산 영화.
아마도 "보지 않겠다"고 결정할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지금 소개하는 영화들에 관한 한 그 선택은 완전히 틀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2기 작품인 이들 영화 네 편은, 한국의 작은 영화들은 '별 볼일' 없다는 편견을 정면으로 깨며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허진호·봉준호·최동훈 감독 등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이제 '과제'로 만든 영화로도 스타 감독을 만들 태세다.
네 편 영화 중 '너와 나의 21세기(감독 류형기)'는 올 들어 지금껏 개봉한 모든 한국 영화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고 싶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연출·연기·촬영·음악 등 작품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에서 흠집을 찾기 힘들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감독 소상민)' 역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맥을 잇는 한편, 그 스펙트럼을 넓히는 수작(秀作)이다. 이 두 작품이 10일 CGV압구정에서, '여자 없는 세상(감독 송재윤)'과 애니메이션 '로망은 없다(감독 박재옥)'가 CGV부산서면에서 각각 개봉한다. 그 다음 주인 17일에 서로 상영관을 바꿔 개봉한다.
아마도 "보지 않겠다"고 결정할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지금 소개하는 영화들에 관한 한 그 선택은 완전히 틀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2기 작품인 이들 영화 네 편은, 한국의 작은 영화들은 '별 볼일' 없다는 편견을 정면으로 깨며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허진호·봉준호·최동훈 감독 등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이제 '과제'로 만든 영화로도 스타 감독을 만들 태세다.
네 편 영화 중 '너와 나의 21세기(감독 류형기)'는 올 들어 지금껏 개봉한 모든 한국 영화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고 싶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연출·연기·촬영·음악 등 작품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에서 흠집을 찾기 힘들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감독 소상민)' 역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맥을 잇는 한편, 그 스펙트럼을 넓히는 수작(秀作)이다. 이 두 작품이 10일 CGV압구정에서, '여자 없는 세상(감독 송재윤)'과 애니메이션 '로망은 없다(감독 박재옥)'가 CGV부산서면에서 각각 개봉한다. 그 다음 주인 17일에 서로 상영관을 바꿔 개봉한다.
◆너와 나의 21세기
21세기 들어 이처럼 20대를 절절하게 묘사했던 영화가 있었던가. 성형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영(한수연)과 딱히 할 일이 없어 사채업자 선배를 돕는 재범(이환)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이 시대의 온갖 상징적 소재들을 영화가 지향한 주제에 기막히게 녹여낸 작품이다. 성형수술, 동거, 닌텐도, 옥션 직거래, 사채업 등의 소재들은 이 영화가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지금 20대들의 삶을 그릴 때 매우 정교하고 면밀하게 쓰였다.
가난한 주인공은 어른을 배신하고 친구로부터 배신당한다. 영화 내내 텅 비어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디자이너가 되려는 자신의 꿈과 대형마트 잡일을 하는 자신의 실제 모습의 괴리에서 비롯된 자아분열의 표정이다(주인공이 마트 안에서 동물인형 옷을 입고 근무 교대하는 장면은 정말 짜릿한 명장면이다).
섬뜩한 파국이 기다리는 마지막, 그리고 수영의 선택을 보며 이 영화가 토해낸 신음소리에 화상을 입는 것 같았다. 인디뮤지션 '해파리소년'이 맡은 음악도 무척 좋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
이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공개됐다. 홍상수 감독의 영향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 영화의 연출법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홍상수식 화법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도 역력하다.
등단한 20대 시인 선우(민성욱)는 여자친구 유나(정지연)와의 중요한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킨다. 유나는 선우의 거듭되는 잘못에 지쳐 이별을 선언한다.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한 선우는 친한 선배 승규(이승준)가 짝사랑하는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몸을 섞는다. 돈 잘 버는 친구들은 그를 무시하고, 여자친구와 선배마저 잃은 그는 지독한 곤경에 빠진다.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은 극히 사실적인 대사다. 시를 쓰는 자신이 순수하다고 믿는 주인공이 선배로부터 타박을 받고,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며 내뱉는 경제적 무능력자의 증오는 우리가 현실 어디에선가 들어봤거나 말했던 그것과 똑같다. 그래서 여러 번 키득거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홍상수 영화처럼 매번 술 마시고 원치 않는 실수를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귀여운(또 언제 술 때문에 망가질지 모르는) 희망을 발견하는 결말 덕에 색다른 영화가 됐다.
◆여자 없는 세상
선술집 사장 창현(강원재)과 그의 친구이자 주방장 한철(김민수), 3년째 백수인 성준(이훈국), 댄스학원 강사인 승민(유환웅)은 고교 동창들. 이들 모두 퇴폐업소에서나 여자를 만나는 신세이지만, 하나 둘씩 사랑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각각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초 지향적인 20대 후반 남자들의 모습을 거칠게 담은 이 영화는 "50억원을 벌어 미스코리아 같은 스무살짜리와 결혼한다"는 창현의 꿈처럼 너무 허황해 초라해진 사내들의 이야기다. 천방지축 친구 네 명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픔을 겪으며 어른이 돼간다. '여자 없는 세상'은 사랑에 서툰 마초들이 패배적으로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로망은 없다
부부의 결혼 기념일에 사남매를 비롯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돼지족발을 먹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의 애니메이션. 수줍고 볼품없던 남편과 예쁘고 똑 부러진 아내가 만나서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를 유쾌하고 흐뭇하게 그렸다.
수채화와 수묵화가 번갈아 등장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기본기가 매우 탄탄한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이다. 첫 만남 때 땀만 흘리던 남자가 몇 번 데이트 후엔 비빔밥에 얹힌 달걀을 빼앗아 먹고, 결혼 후에는 아내를 "똑똑하지 못하다"고 탓한다. 결국 결혼은 생활이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이처럼 20대를 절절하게 묘사했던 영화가 있었던가. 성형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영(한수연)과 딱히 할 일이 없어 사채업자 선배를 돕는 재범(이환)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이 시대의 온갖 상징적 소재들을 영화가 지향한 주제에 기막히게 녹여낸 작품이다. 성형수술, 동거, 닌텐도, 옥션 직거래, 사채업 등의 소재들은 이 영화가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지금 20대들의 삶을 그릴 때 매우 정교하고 면밀하게 쓰였다.
가난한 주인공은 어른을 배신하고 친구로부터 배신당한다. 영화 내내 텅 비어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디자이너가 되려는 자신의 꿈과 대형마트 잡일을 하는 자신의 실제 모습의 괴리에서 비롯된 자아분열의 표정이다(주인공이 마트 안에서 동물인형 옷을 입고 근무 교대하는 장면은 정말 짜릿한 명장면이다).
섬뜩한 파국이 기다리는 마지막, 그리고 수영의 선택을 보며 이 영화가 토해낸 신음소리에 화상을 입는 것 같았다. 인디뮤지션 '해파리소년'이 맡은 음악도 무척 좋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
이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공개됐다. 홍상수 감독의 영향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 영화의 연출법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홍상수식 화법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도 역력하다.
등단한 20대 시인 선우(민성욱)는 여자친구 유나(정지연)와의 중요한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킨다. 유나는 선우의 거듭되는 잘못에 지쳐 이별을 선언한다.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한 선우는 친한 선배 승규(이승준)가 짝사랑하는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몸을 섞는다. 돈 잘 버는 친구들은 그를 무시하고, 여자친구와 선배마저 잃은 그는 지독한 곤경에 빠진다.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은 극히 사실적인 대사다. 시를 쓰는 자신이 순수하다고 믿는 주인공이 선배로부터 타박을 받고,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며 내뱉는 경제적 무능력자의 증오는 우리가 현실 어디에선가 들어봤거나 말했던 그것과 똑같다. 그래서 여러 번 키득거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홍상수 영화처럼 매번 술 마시고 원치 않는 실수를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귀여운(또 언제 술 때문에 망가질지 모르는) 희망을 발견하는 결말 덕에 색다른 영화가 됐다.
◆여자 없는 세상
선술집 사장 창현(강원재)과 그의 친구이자 주방장 한철(김민수), 3년째 백수인 성준(이훈국), 댄스학원 강사인 승민(유환웅)은 고교 동창들. 이들 모두 퇴폐업소에서나 여자를 만나는 신세이지만, 하나 둘씩 사랑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각각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초 지향적인 20대 후반 남자들의 모습을 거칠게 담은 이 영화는 "50억원을 벌어 미스코리아 같은 스무살짜리와 결혼한다"는 창현의 꿈처럼 너무 허황해 초라해진 사내들의 이야기다. 천방지축 친구 네 명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픔을 겪으며 어른이 돼간다. '여자 없는 세상'은 사랑에 서툰 마초들이 패배적으로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로망은 없다
부부의 결혼 기념일에 사남매를 비롯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돼지족발을 먹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의 애니메이션. 수줍고 볼품없던 남편과 예쁘고 똑 부러진 아내가 만나서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이야기를 유쾌하고 흐뭇하게 그렸다.
수채화와 수묵화가 번갈아 등장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기본기가 매우 탄탄한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이다. 첫 만남 때 땀만 흘리던 남자가 몇 번 데이트 후엔 비빔밥에 얹힌 달걀을 빼앗아 먹고, 결혼 후에는 아내를 "똑똑하지 못하다"고 탓한다. 결국 결혼은 생활이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