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

모든 상이 가치있지만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는 여우주연상에 쏠린다. 올해 제3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는 김옥빈(박쥐) 김하늘(7급공무원) 김혜자(마더) 최강희(애자) 하지원(내사랑 내곁에) 등 다섯 명이다. 역대 여우주연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그 무게감이 느껴진다. 심은하 전도연 이미연 장진영 김윤진 이나영 이영애 김혜수 손예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만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과연 올해 가장 빛나는 '스크린 여신'의 칭호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광기, 눈물, 웃음 사이 '디바는 어디에?'

68세 국민엄마서 23세 팜므파탈까지 '세대 초월 5파전' 후배 여우 인기 아성에 김혜자 섬뜩한 캐릭터 변신 도전

▶여자라는 운명의 굴레

여우주연상 후보 중 막내인 김옥빈은 영화 '박쥐'에서 감옥같은 일상을 저주하며 탈출구를 찾아 나서는 여인의 타락을 담아냈다. 소통과 위로가 부재하는, 껍데기만 가족인 사람들 속에서 영혼을 잃은 눈빛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무섭도록 현실적이었다.

김하늘은 '7급공무원'에서 일과 사랑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여자 첩보원을 연기했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남자의 중요 부위만을 정확히 저격하고, 거침없이 장검을 휘두르며 건장한 남자들을 때려 눕히는 등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라 칭할 만한 액션을 소화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김혜자는 이 말의 의미를 가장 무섭도록 체화한 배우다.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는 한 나약한 반백의 여인이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강인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김혜자의 눈빛 속엔 아들을 위해 기름통을 들고 지옥 불구덩이 속에라도 뛰어들 어미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김혜자가 희생의 모성을 연기했다면 최강희는 영화 '애자'에서 암에 걸린 엄마를 보내야 하는 딸의 심정을 눈물겹게 표현했다. 사사건건 부딪히고 때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처럼 싸우는 잔소리꾼 엄마와 천방지축 딸. 갑작스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

'내사랑 내곁에'의 하지원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한 여자의 순애보적 사랑을 연기했다. 루게릭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남자와 아무런 조건 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둘 만의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팔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남자를 씻겨주고 그를 위해 핑클의 '약속해줘'를 부를 때, 그녀는 모든 남자가 기대고 싶어 할 만한 '로망'이었다.

▶연기의 트랜스포머

올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들은 맡은 캐릭터에 따라 수천 가지의 가면을 바꿔쓰며 '연기의 트랜스포머'란 무엇인지를 입증했다.

하지원은 현대물과 사극, 기생과 파이터를 오가는 전천후 연기자다. 드라마 '다모(2003)'와 영화 '형사 Duelist(2005)'에선 조선의 여성 검객을, 2006년 드라마 '황진이'에선 뭇 사내를 상사병에 빠트리는 절세기녀 황진이로 변신했다. 뿐만 아니다. 2002년 영화 '색즉시공'에선 캠퍼스 퀸카를, '내사랑 싸가지(2004)'에선 천방지축 여고생을, '1번가의 기적(2007)'에선 동양챔피언을 꿈꾸는 말광량이 여자 복서가 됐다. '폰(2002)', '가위(2000)' 등에선 숨막히는 호러 연기를 선보였다.

최강희의 필모그래피 또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었다. 영화 '달콤살벌한 연인(2006)'에선 남자 앞에서 수줍은 척 내숭떠는 4차원 킬러를, 1998년작 원조 '여고괴담'에선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막판 반전을 터트리는 여고생을 연기했다. 영화 '와니와 준하(2001)'에서 대차고 엉뚱했던 소녀를 연기한 것도, 청소년드라마 '나'(1996)에서 방송반 여고생의 차분한 표정을 연기한 것도 모두 배우 최강희였다. '애자'는 그녀의 다채로운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감성을 추가한 영화다.

김혜자는 줄곧 어머니다. 하지만 그 세세한 디테일은 달랐다.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어머니상은 역시 장수 프로그램 '전원일기(1980~2002)'였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어가는 고향의 어머니 그 모습 그대로다. 지난해 화제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자신만의 사적 영역을 원하는 소녀같은 엄마를 연기했다. 영화 '마더'는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어머니지만, 극한의 상황에 몰렸다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어머니와는 반대 지점의 광기를 표현했다.

김하늘도 뒤질 수 없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에서 로맨틱코미디의 진수를 선보인 김하늘은 이후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를 거쳐 올해 '7급공무원'을 통해 '장르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로맨티코미디로 한정지어 규정하긴 곤란하다. 정통 멜로와 액션, 호러, 트렌디 드라마의 경계를 완벽하게 넘나들었다. 특히 유지태와 함께 했던 영화 '동감(2000)'이나 고수와 함께 열연했던 드라마 '피아노(2001)'에선 '눈물의 여신'으로 통했다.

김옥빈은 다듬어지지 않은 배우였다. 그녀에겐 들고양이의 투박함과 야생성이 남아있었다. 김옥빈은 평범한 캐릭터를 거부했다. '여고괴담4(2005)'와 '다세포소녀(2006)', '1724 기방난동사건(2008)' 모두 정형화된 공식에서 한 발 삐딱하게 벗어난 캐릭터다.

'박쥐'는 산만하게 분출됐던 김옥빈의 매력을 100％ 한 곳에 집중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