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심사위원들의 애환

후보들 다 아는 사이…심사표 공개 부담되네!

표 안던진 사람들 현장에서 만나면 인간적 어려움…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의 애환은 뭘까.

'봤던 영화 또 보기?' 이런 건 애교에 가깝다. 애환 축에도 못 들어간다. 오히려 발견의 즐거움이 있다. 처음 봤을 때 몰랐던 게 눈에 들어오면 지적 혹은 예술적 희열을 느끼니까.

'출중한 후보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우월함을 찾아내야 하는 고단함?' 이건 심사위원이라면 당연히 안고 가야 하는 짐이다.

사실 심사위원들에겐 생업과 심사의 병행이 힘든 부분이다.

가령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의 경우, 후보작 상영제와 미국 출장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었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서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오전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후보작 상영제가 열리는 서울 영등포 CGV로 달려왔다. 김 위원장은 한숨도 안 자고 하루 네편의 영화를 소화했고 다음날도 꼿꼿한 자세로 상영제를 찾았다. 젊은 사람도 힘들어 하는 시차 적응을 올해 72세의 김동호 위원장은 거뜬히 버텼다.

최근 만난 유명 영화감독 A씨는 몇해전 청룡영화상 시상식 감독상 부문에서 고배를 마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했다.

"그때 심사위원들 중에 나한테 표를 던진 분들의 이름은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그때 나한테 표를 안 줬던 심사위원들의 이름과 얼굴은 잊혀지질 않더라. 만날 때마다 생각난다."

언뜻 듣기엔 수상 탈락자의 애환 같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심사위원들의 가장 큰 애환이다.

올해 청룡영화상 심사를 맡은 한 심사위원도 "심사위원들의 이름과 심사표가 공개된다는 것 때문에 큰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청룡영화상이 끝나면 수상 후보에 올랐던 사람들을 다시 현장에서 만나야 한다. 캐스팅을 해야 하고 함께 투자를 받기도 해야 한다. 아는 선후배도 많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인 만큼 최대한 공정하게 심사를 하겠지만 인간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