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2집의 파란(波瀾)

〈제8보〉(96~112)=버틸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고수(高手)들은 매 순간 진퇴(進退)에 대한 결정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거래를 놓고 흥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고심을 거듭하는 경계선은 고작 1~2집 안팎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의 해일(海溢)이 바둑판 위에 펼쳐진다. 나아감과 물러섬의 지극한 어려움, 여기서도 바둑은 인간세상을 빼닮았다.

백이 96을 통해 묻는다. "97로 꽉 받을래, 110으로 늦춰 받을래?" 그 차이는 2집. 물러선다면 참고도 4까지 예상된다. "그건 낙관 못 하겠는걸." 흑은 97로 버티면서 속으로 이렇게 뇌까렸음직하다. 흑에겐 사실 '2집' 외에 또 다른 노림이 있었다. 99를 선수로 둔 뒤 '가'에 두면 우하귀 백은 못 살아있다. 물론 하변 흑진의 패(覇)는 각오해야 한다.

평화롭게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에서 미묘한 '2집 흥정'이 둘 간의 '동상이몽'으로, 결국엔 전판을 휘몰아치는 난투극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다. 백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패를 이길 수 있을까. 흑이 노리는 '가'의 파호(破戶) 수단은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을까.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에서 칼과 창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