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후에도 여운 남아 신경질을 부리게 돼요"

    입력 : 2009.12.07 03:08 | 수정 : 2009.12.07 08:22

    일일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독불장군 '해리'역 진지희

    “제가 직접 하이킥을 해보라고요? 이렇게 하면 돼요?”‘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해리 역할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아역 탤런트 진지희. 춥다고 투덜대다가도 카메라 앞에선 영락없는‘모델’로 변신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야, 이 빵꾸똥꾸야!"

    꼬마가 이렇게 꽥 소리 지를 때마다 안방극장은 뒤집힌다. MBC TV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샘도 많고 투정도 심한 여자아이 '해리'를 연기하는 아역배우 진지희(10·흑석초 4년).

    갈비라면 사족을 못 쓰고, 할아버지한테도 반말을 서슴지 않는 버릇없는 아이지만 어쩐지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 "해리가 너무 미워서 괴롭다"는 시청자들도 많지만, "해리 때문에 시청한다"는 이들도 많다. 온갖 미움과 찬사를 한몸에 받는 이 어린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히히히. 저도 처음엔 해리가 너무 미웠는데요, 요즘엔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니가 보기에도 그렇지 않아요?" 6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집 근처에서 만난 지희는 텔레비전 속 '해리'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앙칼진 목소리, 콧김을 뿜어대는 콧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참하게 빗어 내린 머리, 배시시 웃는 두 뺨. 말할 때마다 착착 감기는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똘똘하고 애교까지 많은 어린이다. "왜 해리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하잖아요. 한 번 누굴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하고. 김치 맵다고 하는 친구한텐 직접 입으로 빨아서 주고 그러잖아요? 그런 거 보면 알고 보면 사실 착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끝엔 보조개를 드러내며 "히히히…" 하고 웃었다.

    김병욱 PD가 "몰입이 너무 뛰어나 소름 끼칠 정도"라고 극찬할 정도로 놀라운 연기력을 보이는 지희는 벌써 데뷔 7년차에 접어든 연기자다. 만 네 살 때 '아기·어린이선발대회'에 출전해 뽑히면서 연기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출연한 작품은 2003년 KBS 2TV 드라마 '노란 손수건'. 주인공 민주(추상미)와 상민(김호진)이 입양한 여자아기 '유나'를 연기하면서 안방극장에 얼굴을 선보였다. 사실 지희는 그때 어떻게 연기했는지 잘 기억을 못 한다. "워낙 어릴 때잖아요. 그때 뭘 알았겠어요. 어딜 봐야 하는지 몰라서 카메라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헤헤."

    SBS TV 드라마 '연애시대'는 지희가 타고난 연기력을 발하기 시작했던 작품. 극 중에서 미연(오윤아)의 딸 '은솔'은 어린 나이에도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눈빛과 말투로 시청자를 울렸다. 지희는 "감독님이 상세하게 지도해주셔서 힘든지 모르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대본 그냥 통째로 외워서 읽었어요. 목소리 톤이나 표정은 감독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셨고요…."

    가장 존경하는 연기자는 '자명고'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이미숙. "촬영할 때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는 연기를 하시는 걸 봤어요. 깜짝 놀랐어요. '저런 것도 표현할 수가 있구나!' 하고." 타고난 끼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지희 어머니 구유진(34)씨는 "지희 아빠가 '원래 어릴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실까 봐 실천에 못 옮겼다'고 고백하더라"며 "지희가 연기에 소질을 보이는 것도 아빠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엄마 말을 듣고 지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반대해? 연기자는 좋은 거잖아?"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창 친구랑 뛰어놀 시간도 부족한 나이. 지희는 그러나 "연기가 무척 재밌어서 아쉬운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해리가 항상 소리를 지르는 아이잖아요. 그래서 목이 늘 아프다는 것, 촬영하느라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하다는 것 외엔 다 좋아요."

    처음 해리를 연기할 때만 해도 촬영 후에도 여운이 남아 일상생활 할 때 쉽지 않았다고. 그때마다 어머니가 "지희야, 이젠 집이잖아. 해리는 잊어도 돼"라고 일깨워 주곤 했다고 한다. "해리 연기를 하고 나면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해요. 신경질 부리기도 하고. 엄마가 '인제 그만! 촬영 끝났어!'라고 알려주면, 그때야 '아, 이젠 안 그래도 되지' 하죠."

    학교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간다. 올해 1학기 땐 반장을 맡을 정도로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이다. 지희는 "요즘엔 학교에 갈 때마다 단원평가 같은 시험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게 좀 힘들다"고 말했다. "아…, 월요일에 성적 나오는데, 어떡하지?" 말끝에 작게 한숨을 폭 내쉰다.

    지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최다니엘 오빠를 좋아한단 소문이 있던데 진짜야?" 지희가 까르르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에이…, 아니에요." 옆에서 어머니가 "날마다 변해요. 이젠 다른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자 지희는 깜짝 놀라며 "쉿!"하고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댔다.

    "아이, 그건 말하면 안 돼. 기사에 나면 큰일 난단 말이야.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