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홍길동의 후예'
입력 : 2009.12.07 13:30
| 웃음과 액션… 고전소설의 경쾌한 변주 |
고전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은 잘 알려진 대로 조선시대 양반의 서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신분차별을 참지 못하고 의적이 됐다. 이후 탐관오리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고, 민초들과 함께 이상향을 찾아 떠나 율도국을 세운다
'홍길동의 후예'(감독 정용기)는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굳이 원작소설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소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홍길동의 후예'는 소설의 제목, 의적이라는 주인공의 기본 성격, 부패한 상류층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행동 정도만 간접적으로 활용한다. 시대 배경, 주변 인물, 사건 전개, 결말 등은 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새롭게 구성했다.
그래서 영화는 발걸음이 가볍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장르다. '홍길동전'은 영웅소설이다.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 부패상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혁명적 사고를 담고 있다. '홍길동의 후예'는 액션, 멜로가 가미된 코미디 영화다. 사회 고발이나 영웅의 액션보다 웃음을 뼈대로 삼고 있다. 또 인간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홍무혁(이범수)은 홍길동의 18대손이다. 신분은 홍길동과 천양지차다. 무혁은 고등학교 음악교사이고, 아버지 만석(박인환)은 대학교수다. 우리 사회 중산층이다. 부자 관계도 정반대다. 길동은 아버지를 적대시하며 혈혈단신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 무혁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부패한 재벌을 응징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한 명의 나쁜 부자를 혼내주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무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훔친 돈을 나눠주는 장면은 없다. 오히려 길동이 돈과 곡식을 나눠주는 장면만 나온다.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이 영화의 한계일 수도 있다.
대신 새로 창조한 인물로 관객을 유혹한다. 아버지는 정의롭고 온화하며, 어머니는 가정적이면서도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다. 영화에서는 대결 구도가 선명하지 않다.
멜로 라인이 중심축을 형성한 것도 다르다. 무혁의 동료 교사 송연화(이시영)는 철부지다. 무혁만 졸졸 쫓아다니며 결혼에 목숨을 걸고, 결별 선언을 듣고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눈물이나 질질 짠다. 강직한 검사이면서도 집에서는 걸쭉한 사투리로 욕을 퍼부어대는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송재필(성동일)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이정민(김수로)은 정계, 재계를 아우르는 블랙 커넥션의 중심 인물이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 사건을 만들고, 코믹한 웃음을 유발한다.
'홍길동의 후예'는 무혁의 가족이 이정민의 사무실과 집을 터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꽤 치열한 두뇌싸움과 정보전, 액션이 펼쳐진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가 기본적으로 코미디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가장 큰 역할은 역시 성동일이 맡는다. 도둑놈과 애교 섞인(?) 통화를 하고, 아내 앞에서는 설설 긴다. 휴대폰의 '로또 대박' 컬러링을 들으며 로또 복권에 번호를 기입하는 장면은 희극적이다. 너무 지나쳐서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영화는 이음새가 매끄럽거나 치밀하지 않다. 여러 장르가 두서없이 섞여 있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 대신 유쾌하다. 소설과 같은 진지한 영웅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묵직한 메시지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홍길동의 후예'는 나름대로 흥미롭다. '재미'라는 토끼는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별 무리없이 흘러가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가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범수는 액션, 멜로가 공존하는 소시민 영웅 캐릭터를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올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킹콩을 들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평범해 보이는 캐릭터를 적절한 수위로 표현한다. '명품 조연' 성동일, 이시영의 코믹함은 이범수와 대칭을 이룬다.
'홍길동의 후예'는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소설을 각색할 경우,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작은 대답을 제시한다. 소설의 인물, 구성, 사건에 얽매이지 않는 경쾌한 행보를 보여준다. 무거운 사회 고발 영웅소설을 코미디물로 바꿨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지켜볼 만하다.
'홍길동의 후예'(감독 정용기)는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굳이 원작소설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소설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홍길동의 후예'는 소설의 제목, 의적이라는 주인공의 기본 성격, 부패한 상류층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행동 정도만 간접적으로 활용한다. 시대 배경, 주변 인물, 사건 전개, 결말 등은 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새롭게 구성했다.
그래서 영화는 발걸음이 가볍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장르다. '홍길동전'은 영웅소설이다.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 부패상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혁명적 사고를 담고 있다. '홍길동의 후예'는 액션, 멜로가 가미된 코미디 영화다. 사회 고발이나 영웅의 액션보다 웃음을 뼈대로 삼고 있다. 또 인간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홍무혁(이범수)은 홍길동의 18대손이다. 신분은 홍길동과 천양지차다. 무혁은 고등학교 음악교사이고, 아버지 만석(박인환)은 대학교수다. 우리 사회 중산층이다. 부자 관계도 정반대다. 길동은 아버지를 적대시하며 혈혈단신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 무혁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부패한 재벌을 응징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한 명의 나쁜 부자를 혼내주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무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훔친 돈을 나눠주는 장면은 없다. 오히려 길동이 돈과 곡식을 나눠주는 장면만 나온다.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이 영화의 한계일 수도 있다.
대신 새로 창조한 인물로 관객을 유혹한다. 아버지는 정의롭고 온화하며, 어머니는 가정적이면서도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다. 영화에서는 대결 구도가 선명하지 않다.
멜로 라인이 중심축을 형성한 것도 다르다. 무혁의 동료 교사 송연화(이시영)는 철부지다. 무혁만 졸졸 쫓아다니며 결혼에 목숨을 걸고, 결별 선언을 듣고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눈물이나 질질 짠다. 강직한 검사이면서도 집에서는 걸쭉한 사투리로 욕을 퍼부어대는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송재필(성동일)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이정민(김수로)은 정계, 재계를 아우르는 블랙 커넥션의 중심 인물이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 사건을 만들고, 코믹한 웃음을 유발한다.
'홍길동의 후예'는 무혁의 가족이 이정민의 사무실과 집을 터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꽤 치열한 두뇌싸움과 정보전, 액션이 펼쳐진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가 기본적으로 코미디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가장 큰 역할은 역시 성동일이 맡는다. 도둑놈과 애교 섞인(?) 통화를 하고, 아내 앞에서는 설설 긴다. 휴대폰의 '로또 대박' 컬러링을 들으며 로또 복권에 번호를 기입하는 장면은 희극적이다. 너무 지나쳐서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영화는 이음새가 매끄럽거나 치밀하지 않다. 여러 장르가 두서없이 섞여 있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 대신 유쾌하다. 소설과 같은 진지한 영웅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묵직한 메시지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홍길동의 후예'는 나름대로 흥미롭다. '재미'라는 토끼는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별 무리없이 흘러가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가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범수는 액션, 멜로가 공존하는 소시민 영웅 캐릭터를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올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킹콩을 들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평범해 보이는 캐릭터를 적절한 수위로 표현한다. '명품 조연' 성동일, 이시영의 코믹함은 이범수와 대칭을 이룬다.
'홍길동의 후예'는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소설을 각색할 경우,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작은 대답을 제시한다. 소설의 인물, 구성, 사건에 얽매이지 않는 경쾌한 행보를 보여준다. 무거운 사회 고발 영웅소설을 코미디물로 바꿨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