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바람개비

〈제12보〉(155~166)=흑백의 무리들이 난마(亂麻)처럼 얽혔다. 마치 천원(天元)을 중심으로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 같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다 보면 약한 말은 상대 날개에 베일 수밖에 없는 법. 하지만 대국자들은 바람개비 날개가 아니다. 작은 날개가 부러지더라도 적의 더 큰 날개를 파손하면 성공이다. 이렇게 본다면 바둑은 축적(蓄積)보다는 소모(消耗)의 게임이다.

155로 끊었다. 원래 정수는 165의 곳에 호구 쳐야 하는데 지금은 잘 안 된다. 참고도 백 2 이하 24까지 흑이 한 수 부족으로 잡히는 것. 마지막 1분 초읽기 속에서 이 복잡한 변화를 한눈에 읽어내는 프로들의 솜씨는 역시 탄복할 만하다. 155면 161까지는 외길 진행. 우상 쪽 백 대마는 162로 생환해 갔다. 또 하나의 얽힌 실타래가 풀렸다.

하지만 중앙 전투는 여전히 미궁이다. 165 단수에 155자리로 이어주지 않고 166으로 되단수 쳤다. 여기서 흑은 155로 때릴 수 있을까. 때려서 이길 수 있다면 그 길이 쉽고 간명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반발 수단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후야오위가 고통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