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흑의 비극(悲劇)

〈제13보〉(167~186)=바둑의 본질은 계산인가, 전투인가. 우문이지만 아직 아무도 명확한 답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둘 다 정답인 듯도 하고, 어느 한쪽만으론 정답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같은 양면성이야말로 바둑이 지닌 신비한 마력이란 사실엔 누구나 동의한다. 싸움에선 계속 재미 본 것 같은데 집이 모자란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더냐.

끊임없이 이어져 온 전투 속에서 흑은 또다시 '가'로 백 석 점을 때려내느냐의 여부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 참고도를 보자. 흑 1이면 상중앙은 시원해지는데 아래쪽 넉 점은 버릴 수밖에 없다. 이후 끝내기를 상정하면 반면(盤面)으로 비슷한 승부란 결론이 나온다(A와 B는 맞보기).

그래서 167 패(覇)로 받았는데, 하지만 흑으로선 비극적이게도 팻감이 부족하다. 결국 169로 밀었을 때 백은 170으로 패를 해소했다. 174까지 흑 4점마저 일단 포획하더니 우세를 의식한 듯 178로 두텁게 처리한다. 185까지 흑 4점을 도로 풀어주고 자신도 186으로 연결한 것. 일단 후수지만 하변 흑의 목숨을 은근히 노리고 있다. 후야오위의 손길이 더 바빠졌다. (170…▲,18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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