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기자의 WHY?] 겨울 극장가 할리우드 한판

블록버스터 힘에 압도… 기 못피는 한국 영화

장르 한계 등 원인 '대작'에 눈돌려 '2012'에 '백야행''시크릿'등 고전

　한겨울 차가운 날씨처럼 충무로가 할리우드 한파에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 극장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점령당해 웰메이드 한국영화들이 실력 발휘를 못하고 있다.

올 7월부터 10월까지 한국영화 전국기준 점유율(영화진흥위원회 분석자료)이 50~60％ 이상을 오갈 정도로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겨울의 시작인 11월엔 40.6％로 뚝 떨어졌다. 12월에 들어서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는 모두 할리우드 영화 차지다.

11월 12일 개봉한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 '2012'가 겨울 한국영화 한파의 시작이었다. 엄청난 물량공세와 사실적인 CG로 대재앙을 그린 '2012'는 3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한 달 동안 480만 명 이상을 불러 모았다.

곧 이어진 비의 할리우드 주연작 '닌자 어쌔신'은 적은 극장 수에도 실속 있는 전략으로 일부 한국영화가 노렸던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비의 인기에다 근래에 찾아보기 어렵던 성인 액션 코드를 보태 여성뿐만 아니라 성인 남성 관객까지 흡수해 100만 관객을 이끌었다.

올초 개봉해 큰 인기를 끈 청소년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의 2편인 '뉴문' 역시 12월 개봉 즉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한국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여성관객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꽃미남 뱀파이어의 순정적인 사랑 이야기는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여심을 녹였다. '뉴문'은 개봉 1주 만에 1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입동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 3편에 충무로의 안방을 내준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백야행' '홍길동의 후예' '시크릿' 등의 한국영화들은 모두 웰메이드 작품으로 인정을 받으며 선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월까지 높았던 한국영화의 점유율에 대한 반동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운대' '국가대표' '굿모닝 프레지던트' 등 하반기의 굵직한 한국작품들을 찾았던 관객들이 외화에 눈을 돌린 것. 특히 대작 한국영화들이 없는 기간에 할리우드 영화들이 개봉 한 것도 주효했다.

멀티플렉스 CGV 홍보팀의 이상규 팀장은 "올해 전반적으로 한국영화가 잘된 상황으로 이미 작년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은 일종의 숨 고르는 기간으로 보인다. 지금 시장을 주도하는 콘텐츠가 없는 게 문제지만 큰 영화 한 편만 나오면 또 판세가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영화의 또 다른 패인으로 장르의 한계를 들 수 있다. 특히 지난해 '세븐 데이즈' '추격자'로 시작된 한국형 스릴러가 올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평가다. '마린보이' '핸드폰' '작전' '그림자 살인' '인사동 스캔들' '보트' '이태원 살인사건' 등 올해 봇물처럼 쏟아진 한국 스릴러 영화들과 '백야행' '시크릿' 등이 커다란 차별점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릴러 영화에 이미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장르적 매력이 없었다는 얘기다 . 실제 올해 한국영화 흥행 10위 안에 정통 스릴러는 한 편도 없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르의 영화가 맞붙어 결국 관객이 분산된 것도 약점이 됐다. 코미디 영화 '홍길동의 후예' 역시 참신한 발상임에도 '과속 스캔들' '7급 공무원' '거북이 달린다' 등 올해 흥행에 성공한 코미디 영화들과 비교해 아쉬움을 남겼다.

< 연예사회팀ㆍjk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