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상은 결국 작품성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영화상의 자부심'으로 불리는 제30회 청룡영화상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대상인 최우수작품상으로 선정했다.
'마더'는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자격을 충분히 갖춘 영화다. '마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함께 올 상반기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칸국제영화제에도 진출하며 명성을 얻었다. '국민엄마' 김혜자와 원빈이 남녀 주연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현재 한국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수준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시상식은 청룡영화상의 전통을 다시 보여줬다. 영화의 대중성보다 예술성, 휴머니즘에 조금 더 무게를 뒀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최고 화제작은 이병헌 송강호 정우성 주연의 '놈놈놈'이었다. 하지만 최우수작품상은 핸드볼 국가대표선수들의 눈물과 우정, 꿈을 리얼하게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이 차지했다.
올해도 비슷했다. 최대 화제작은 역시 '해운대'와 '국가대표'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서 각각 1100만, 87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의 쌍끌이 흥행을 이끌었다. 신선한 소재, 해운대를 덮치는 쓰나미 CG와 스키점프 선수들의 점프 장면을 담은 촬영,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휴머니즘으로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청룡상은 조금 더 엄격했다. '마더'는 일반적인 '어머니'가 아닌,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는 동물적 본능을 가진 '어미'의 내면을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 등 거의 모든 작품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성취한 감독이다. '마더'는 봉준호의 장점이 극대화된 영화다. 그렇다고 다른 후보작들이 결코 패자는 아니다. 네 작품 모두가 작품상 트로피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올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특히 치열했다. 지난 11월 말 후보자(작)가 발표됐을 때부터 그 열기가 예상됐다. 영화계에서는 "노미네이트 차원이 다르다", "될 작품과 배우가 다 올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박쥐'처럼 해외 영화제 수상작이면서 다른 국내 영화상에서는 역차별받았던 작품과 배우가 후보에 오른 걸 보고 놀랐다. 올 청룡상은 그래서 빛났다"고 평가했다. 최종 수상자(작)와 관계없이 노미네이트 자체로 이미 권위와 공정성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감독상을 수상한 김용화 감독은 '국가대표'에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꿈과 눈물, 서러움을 절절하게 그려내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진수를 보여줬다. 특히 스키점프 도약 장면에서 보여준 뚝심과 연출력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 국내 영화계 시상식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노미네이트를 둘러싼 시비가 일었거나, 여러 해 진행돼온 영화상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와중에서 청룡상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들을 후보작에 올리고, '마더'를 최우수작품상으로 선정함으로써 그 권위를 스스로 지켜냈다.
'내사랑 내곁에' 콤비인 김명민, 하지원의 남녀주연상 수상은 어쩌면 예상된(?) 결과였다. 김명민은 루게릭 환자 역을 맡아 체중을 무려 20kg이나 빼는 메소드 연기의 모범을 모여주었다. 배우가 작품에 출연하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누가 그런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원 역시 데뷔 11년만에 처음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고, 처음으로 수상했다. 죽음이 예고된 환자를 사랑하는 여성의 헌신적인 내면을 실감나게 표현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청룡상은 올해 또한번 가슴 찡한 장면을 연출했다. 영화를 사랑했고, 청룡상을 사랑했던 고 장진영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지난해 최진실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사랑한 배우들을 잊지 않고 가슴에 따뜻하게 품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영결식 때 청룡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앞세웠던 장진영의 부친이 특별상 트로피를 받을 때는 시상식장이 잠시 숙연해졌다. 청룡상이 단지 상을 주고받는 시상식이 아니라,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특징은 참석자들의 면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 촬영 중인 이병헌은 인기스타상을 받기 위해 특별히 짬을 내 참석했다. 남녀주연, 조연상 후보자들 중에서 장동건, 김혜자를 빼고는 다 참석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켜 영광의 수상자들에게 진심어린 축하 박수를 보냈고, 축하 리셉션과 뒷풀이까지 함께 했다. 송강호, 신하균이 동료의 멘트에 파안대소하는 장면은, 청룡상이 '사람 냄새 나는' 영화인들의 축제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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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