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2009 한국영화] (2) 작품

　▶든든한 허리-'과속 스캔들' '7급 공무원' '거북이 달린다'

사람이고 산업이고 허리가 튼튼해야 건강한 법이다. 충무로도 마찬가지. 튼실한 허리 역할을 한 영화들이 올해 충무로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 개봉해 올해 초까지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게 했던 작품이 바로 '과속 스캔들'과 '쌍화점'이다. 두 작품은 올해에만 각각 388만, 331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올해 상반기 흥행의 불씨를 키운 소중한 작품들이다.

특히 '과속 스캔들'의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등 3명은 환상 호흡을 선보이며 코미디 영화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뒤를 이어 김하늘 강지환 주연의 '7급 공무원'이 407만 관객을 동원하며 코미디 영화 바통을 이어 받았고, 305만 명이 찾은 '거북이 달린다'는 코미디 중간 계주 역할을 수행했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장진 감독, 장동건 주연의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257만 관객의 웃음보를 자극하며 올해 코미디 영화 흥행 계보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큰 이슈와 대박 흥행을 이끌어낸 작품들은 아니더라도 한국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2009년을 풍요롭게 만든 작품들도 다수다. '킹콩을 들다' '그림자 살인' '작전' '인사동 스캔들' '애자' '내 사랑 내 곁에' '차우' '불꽃처럼 나비처럼' '청담보살' 등은 100만~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를 지켜냈다. 비록 흥행엔 실패했지만 '불신지옥' '김씨 표류기' '헬로우 마이 러브' '파주' '백야행' 등은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됐다.

독립 영화 성공 가능성 확인

　▶독립 영화의 힘-'워낭소리' '똥파리'

한국영화 빅4가 올해 충무로를 이끌었지만 이들을 빼놓고 한국영화를 말할 수는 없다. 바로 작지만 강했던 독립영화들이다.

독립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올해 충무로가 가장 어렵던 시기인 1월에 개봉한 '워낭소리'는 느린 소걸음에 흔들리는 워낭처럼 천천히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스타도 기교도 없는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2년간의 촬영이란 진정성 하나 만으로 기적처럼 관객 295만을 불러 모았다.

늙은 소와 평생 농사를 함께 짓던 할아버지의 우정을 잡아낸 '워낭소리'는 10대부터 80대까지 극장을 찾게 하는 진풍경을 만들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워낭소리'는 충무로 관계자와 질 낮은 상업영화에 질려 있던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또 영화의 완성도보다 손익계산부터 따지는 일부 영화관계자들에겐 따끔한 충고가 됐다.

'똥파리' 역시 워낭소리의 뒤를 이어 독립영화 파워를 세상에 알렸다. 너무나 리얼한 대사와 연기로 관객을 조금씩 빨아들인 '똥파리'는 15만 관객을 모았다. 독립영화의 1만 관객은 상업영화의 100만 관객과 비슷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흥행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독립영화이지만 양익준 김꽃비 이환 등 신인들의 발견은 그 어느 것보다 값진 것이었다. 상업 논리로 신인들에게 점차 문이 좁아지고 있는 충무로에 이들의 탄생은 단비나 마찬가지다.

'똥파리' 열풍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이어져 세계 유수의 영화제인 로테르담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 도빌 아시안영화제 등 16개 국제영화제에서 주요상을 휩쓰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 외에도 '낮술' '반두비' '여행자' '사람을 찾습니다' 등의 독립 영화들이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충무로를 살찌우는 영양분 역할을 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충무로 불황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질 낮은 상업영화의 범람에 뒤돌아선 팬심은 여간해선 풀리지 않았다. 올해 한 가닥 희망은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귀환뿐이었다.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른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복귀작과 흥행 영화 제조기 윤제균 김용화 감독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작품들은 2009년 한국영화를 살릴 기대주였다.

'신선한 소재'4색 흥행 몰이

　▶충무로 르네상스 이끈 빅4-'박쥐' '마더' '해운대' '국가대표'

'박쥐'는 박찬욱 감독의 3년 만의 복귀작이자 대한민국 대표 배우 송강호와 '복수는 나의 것' 이후 7년 만의 재결합이라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독특한 설정과 김옥빈 김해숙의 신들린 듯한 연기는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톱스타 송강호는 성기노출이라는 한국영화의 금기를 깨버리는 선구자가 됐다. 여러 가지 논란 속에서 영화는 222만 명 이상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였고, 박찬욱 감독은 제6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는 쾌거를 올렸다.

봉준호 감독과 '국민 엄마' 김혜자의 '마더'는 한국영화 속 엄마의 전형성을 한방에 날려버리며 충무로 상반기를 이끌었다.

'박쥐' 개봉 한 달 뒤 관객과 만난 '마더'는 '박쥐'의 이슈 바통을 그대로 건네받아 충무로에 다양한 화제를 뿌리며 한국영화 부활에 신호탄을 쐈다. 또 영화 속 김혜자의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한 그로테스크 연기는 그녀의 모든 이미지를 깨뜨렸고, 군 제대 후 첫 작품인 톱스타 원빈과 명품 배우 진구의 연기가 물이 올랐음을 확인시켰다.

'마더'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할리우드로 향하던 관객들의 발길을 충무로로 돌리게 만들었다.

한국영화의 흥행은 여름 '해운대'에서 터졌다. 쓰나미처럼 관객들이 밀려온 '해운대'는 역대 다섯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1139만 명이란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코미디 영화의 흥행 귀재였던 윤제균 감독의 화려한 변신과 함께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가 불가능이 아니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또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이민기 김인권 강예원 등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해도 성공할 수 있음을 알린 첫 작품이 됐다.

'해운대'와 흥행 경쟁을 펼친 '국가대표'는 오히려 형제처럼 한국영화 흥행을 쌍끌이 하며 충무로 암흑기의 탈출을 알렸다.

특히 스키점프란 생소한 소재를 한국적 드라마와 할리우드급 영상으로 엮어내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면서도 시원하게 만들었다. 또 웰메이드 영화는 관객이 등 돌리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충무로에 알려준 작품이다. '국가대표'는 형님 '해운대'에 이어 808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올해 흥행 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메가 쓰나미에 초토화됐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영화들이 올핸 모정과 같은 무한한 사랑을 지닌 한국영화 팬들 덕에 결국 부끄럼 타지 않아도 될 한 해가 됐다.

코미디 영화 '부활 신호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