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시크릿'

배우들 열연…흐릿한 반전 아쉬워

　스릴러 영화의 묘미 중 하나는 기다림이다. 긴장감이 동반되는 기다림. 그것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 영화 속 인물의 행동 하나, 대사 한 마디는 퍼즐 조각과 같다. 관객은 이 퍼즐 조각을 다양하게 조합하면서 스토리를, 결말을 상상한다. 인물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기본. 관객과 감독 사이에서도 신경전이 벌어진다. 누구든지 성급하게 덤비면 실패하기 쉽다. 그래서 스릴러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누가 승자인가 하는 최종 결과는 나중 문제다.

'시크릿'은 전형적인 범죄/스릴러 장르의 구도를 갖고 있다. 화제작 '세븐데이즈'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윤재구는 감독, 각본 1인2역을 맡아 솜씨를 발휘한다.

강력반 형사 성열(차승원)은 살인 현장에서 아내 지연(송윤아)의 흔적을 발견한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핑크 바이올렛 립스틱이 묻은 술잔, 귀고리, 단추다. 성열은 동료들 몰래 그 증거들을 없앤다. 피해자는 악랄한 조폭 두목 재칼(류승용)의 동생이다. 재칼은 형사들이 범인을 잡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복수하겠다고 장담한다. 성열은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아내를 구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동료 형사들의 눈을 피해야 하고, 재칼의 발톱에 찢기기 전에 아내를 도피시켜야 한다. 영화는 이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용의자 얼굴이 지워진 CCTV가 확보된다. 재칼이 범인을 찾는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어떤 '물건' 때문이다. 여기에서 제3자가 등장한다. 아내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베일에 싸여 있다. 궁금한 것은 또 있다. 살인 용의자로 몰리고 있는 지연의 침묵이다. 그녀는 자신을 도우려는 성열의 간곡한 요구를 거부한다. 살인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 성열과 최 형사(박원상)의 경쟁 구도가 펼쳐진다.

영화의 플롯은 다소 복잡하다. 성열과 지연의 불화, 성열의 과거 행적, 성열과 재칼의 아슬아슬한 싸움, 성열과 제3인물의 신경전.... 관객들은 추측한다. 살인 사건과 각 인물들을 연결하는 어떤 기막힌 비밀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래서 영화의 한 장면, 대사 하나에서 단서를 발견하려고 집중한다. 비밀을 밝혀줄 결정적 한 방! 감독과 관객의 머리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진다. 감독은 사건의 비밀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감춰야 한다. 그 템포가 중요하다. 너무 일찍 정보를 노출하면 김이 빠지고, 너무 감추면 지루해진다. '시크릿'은 제목 그대로, 스릴러 영화답게, 비밀의 문을 꼭꼭 걸어잠근다. 하나씩 비밀이 드러나는 듯하지만, 시원하게 밝혀지는 것은 없다. 꽤 뚝심있게 침묵을 지킨다. 그런데 완강하게 닫혀있던 비밀의 문은, 어느 순간 갑자기, 완벽하게 열린다. 밝혀진 '시크릿'의 비밀은 다소 허무하다. 정확하게는 초점이 맞지 않는다.

감독은 지연의 비밀을 결정적 반전으로 숨겨놓았다. 승부처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은 어떤 '물건'을 둘러싼 공방, 성열과 제3자의 술래잡기로 채워진다. 반전의 핵심인 성열과 지연의 내면은 너무 흐릿해서,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은 거슬린다. 그것도 일방적인 대사로 처리해 맥이 빠진다. 아내와의 섹스에 관한 한 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그래도 후반부까지 나름대로 밀도를 유지한 점은, '세븐데이즈'만큼은 아니지만, 꽤 평가할 만하다(눈치빠른 관객은 중반에 알아챘지만). 그 힘은 차승원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온다. 송윤아의 변신도 눈길을 끌고, '해운대'에서 돋보였던 김인문과 박원상도 제 역할을 해낸다. 다만 재칼은 강하고 딱딱한 느낌 일변도여서 불편하다. 배우의 연기력이 아니라 캐릭터 설정의 문제다. 조폭 두목이라고 해서 꼭 맹수처럼 사나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