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우치' 촬영엔 무려 8개월이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걸까. 김윤석은 그 원흉으로 크레인을 꼽았다.
"크레인을 이동시켜서 설치하는데만 두 시간, 그걸 세팅해서 맞추는데 또 두 시간이다. 그 다음 무술팀이 테스트를 해야 하고 마지막에 배우가 들어간다. 아... 정말 와이어는, 정말 정말...."
그의 얼굴에선 징글징글맞은 존재를 설명할 때 차마 그 지긋지긋함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는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와이어 줄 하나엔 최소 다섯 명의 사람이 붙는다.
"압권은 전우치의 분신술이었다. (강)동원이가 10명의 분신을 만들어서 집단 와이어 액션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선 줄 잡는데 50명 이상이 필요했다. 스태프는 물론 배우에 로드매니저, 심지어 여자들까지 다 붙어야 했다."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촬영을 하니 '전우치' 현장에서 남는 건 단 하나, 김윤석의 말대로 "정" 뿐이다. |
| 영화속 '정서적인 정복' 도발적 표현 |
| "유해진 '타짜'이어 또 나한테 깨지는 역" |
| |
▶왜 입에 손가락을 드미냐고?'전우치' 시사회 때부터 화제의 초점은 도사 화담(김윤석)과 코디네이터 서인경(임수정)의 키스신에 모아졌다. 단순 키스가 아니다. 김윤석은 임수정의 입 속에 손가락을 삽입했다.
그는 대체 왜, 하필, 손가락을 집어 넣어야 했을까.
"마성을 지닌 악마의 키스다. 화담이 서인경 안에 잠든 욕망을 깨우는 장면이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어머 저걸 어떡해'라는 느낌을 들 수 있게 할까 감독과 현장에서 상의했다. 단순히 한 동작으로 가장 도발적일 수 있는, 상대를 정복하고 반항할 수 없게 잡아버리는 게 뭘까. 우린 '정서적인 정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최동훈 감독이 손가락을 집어넣자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화담은 왜 유혹에 빠졌을까신통한 의술로 세상을 치유하려던 도사 화담. 그에게 전우치는 눈엣가시였다.
"화담이 예와 공명, 봉사, 인격을 강조하는 인물이라면 전우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충직하게 하나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 유혹을 당하면 더 쉽게 빠진다. 그의 대사처럼 '누구나 인간의 마음 속에는 짐승 한마리가 있지 않습니까'이다. 화담은 불행한 인물이다."
악의 화신으로 변한 화담은 현대 서울의 레스토랑에서 사람을 모두 죽이고 혼자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다. 왜 죽였을까. "인간의 음식 먹는 소리가 듣기 싫어 다 죽였다. 그 꼬락서니가 보기 싫은 거다. 오백년 살면서 인간의 가망없음을 다 본 거지."
레스토랑을 나가던 화담은 구석에서 벌벌 떠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를 죽일 듯 다가가던 그는 냉소하며 '더 살아도 결국은 아무 것도 없단다'고 말한다.
"권태롭고 회의적인 말이다. 사실 영화 첫 장면에서 노인의 병을 고쳐주며 노인 옆에 있는 꼬마에게 '몇 살이지? 음, 그래 할아버지 잘 보살펴 드려라'라고 말하는데 다시 레스토랑에선 '몇 살이지? 더 살아도 아무 것도 없단다'라고 말하는 거다. 화담의 변신에 대한 복선이 깔린 거다."
▶유해진, 참 '개스럽더이다'김윤석과 유해진은 '타짜'(2006)에 이어 최동훈 감독 작품에서 다시 만났다.
"유해진은 참 슬프게도 날 만나면 맨날 깨지는 역할이다. '타짜' 땐 손이 날라가더니.(웃음) 이번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내가 놓친 피리를 초랭이(유해진)가 신체의 한 부위로 덥썩 잡는 부분이다. 그때 해진이 표정이 예술이었다. 딱 보면서 '아 얘 개 맞다'라고 생각했다. 비굴하게 웃으면서 할딱할딱 거리는데, 유해진 아니면 이거 정말 못한다. 굉장히 인물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하는 친구다."
김윤석은 그동안 자신의 캐릭터와 작품을 음계로 표현하곤 했다. '추격자'의 전직 형사 엄중호는 "낮은 도에서 높은 도를 한 방에 치고 올라가는 캐릭터"였고, '거북이 달린다'의 시골 형사 조필성은 "모든 표현을 도레미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전우치' 팀에 대한 그의 음악적 해석을 부탁해 봤다.
"이 영화에선 캐릭터별로 고유의 음계가 있다. 나는 '낮은 라'를 끝까지 가져가야 했다. 그 위에서 전우치가 '높은 라'를 한다. '솔파' 정도를 초랭이가 한다면 '레미' 정도의 어정쩡한 음을 세 명의 신선이 하는 거다. 그 균형감, 앙상블을 최대한 맞춘 영화라고 생각한다."
< 권영한 기자
champano@sportschosun.com>